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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록 Oct 07. 2022

감정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애프터 양(2022), 감독 코고나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처음 대학원에 가서 기계학습이라는 개념을 배웠을 때, 나는 그 철학적 의미에 대해 깊은 생각이 없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빨리 진도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정도 머리에, 손에 그런 것들을 익히고 나서는 가끔 딴생각을 하곤 했다. 인간과 기계는 도대체 어디가 다른 것일까? 인간과 기계는 정말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기계를 공부하면서 인간을 떠올린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애초에 많은 학자들은 인간을 본 따서 기계를 만들었고, 또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쌓여 온 것을 그대로 학습했으니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인간과 기계는 유사하게 발전해왔으나, 우리는 기계가 결코 인간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인간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거의 똑같은 존재가 탄생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우리가 같은지, 다른지를 정의 내리기 위해 아주 격한 논쟁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들이 행여라도 감정이나 권리를 가지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기계는 우리에게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애프터 양. 올해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결국 서울로 돌아와 보게 되었다. 워낙에 어려운 영화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에겐 몇 안 되는 인생영화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주변에 꼭 봐달라고 적극 추천을 했지만, 나와 같은 감상평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았다. 심지어 같은 전공으로 석사를 했던 랩실 동료들도 혹평을 일삼으며,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슬프고 또 슬펐으며, 아직도 양이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 양에게 물어보며 살아가고 있다.


예매에 실패했다... 관객과의 대화를 놓치다니ㅠㅠ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먼 미래, 한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휴머노이드 양이 어느 날 갑자기 고장이 나게 되고, 양을 고치려는 아버지는 양의 메모리 속에 숨겨진 양의 기록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기록물들은 휴머노이드의 알고리즘 상으로는 남길 수 없는 메모리였다. 가족들은 양이 남긴 기억을 살펴보며 양이 무엇을 남기려고 했는지 하나씩 찾아가게 된다.


양의 가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I, 딥러닝이라는 것 안에는 다양한 연구 분야가 있다. 이미지를 연구하는 비전 분야가 있고, 언어를 연구하는 자연어 처리 분야가 있고, 소리를 연구하는 분야도 있다. 또 그 안에서 세부적으로 분야가 또 나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연구의 방향은 인체의 작동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비전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기는 딥러닝 알고리즘에 인간의 시신경이 물체를 인식하는 방식을 적용했을 때다. 자연어 처리 분야 또한 인간이 언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연구하여 그것을 그대로 알고리즘으로 구현했을 때 성능이 매우 좋았다.


 인공지능이 사자와 호랑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많은 수의 사자, 호랑이 사진을 가져다가 인공지능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은 사자, 이것은 호랑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한글을 배우는, 동물의 이름을 외우고, 과일의 이름을 외우는 것과 똑같다. 다만 인공지능은 그 속도가 비약적으로 빠른 것뿐이고, 학습한 것 외의 것을 하지 못 할 뿐이다.


  그렇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아니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학습을 한다. 다만 인간은 매우 느리고,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학습한다. 반면에 인공지능은 매우 빠르고, 단 한 가지만 반복적으로 학습한다. 그리고 학습한 기억(메모리)은 우리의 뇌에, 인공지능의 칩에 기록된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뇌와 칩에 기록된 기억을 끄집어내서 저 동물이 사자라는 걸, 호랑이라는 걸 구분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똑같이 전력이 끊기지 않으며,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도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양은 감정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학습한 것이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그리움과 우울함. 한 번도 학습시킨 적 없는 것들을 학습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누군가를 잃고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감정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감정마저 학습하는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아이는 슬픔과 기쁨, 그리움과 우울함, 사랑과 미움을 지니고 태어날까? 만일 감정마저 학습이 가능하다면, 이런 게 사랑이고, 이런 게 미움이라고 학습시킬 수 있다면,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존재를 인공지능이라고 해야 하는가, 인간이라고 해야 하는가?




  양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일기장을 누군가 펼쳐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양이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기보다는 그저 남겨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육신이 낡고 녹슬어서 결국 한 줌의 흙이 된다고 하면,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갔다는 것을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 답은 곧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떠나가는 양은 자신과 함께 했던 사람들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하나하나 꾹꾹 눌러쓰며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양이 남기고 간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양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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