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나누면 정말 두 배가 되나요?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씁쓸함

by 수록


친구의 성공이 자랑스러웠던 시절

고삼때 가장 친했던 친구는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였던 우리반 반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제 친구는 정작 수능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흔히 ‘하늘’이라고 부르는 곳까지도 갈 수 있었을 친구라, 아쉬움은 그 친구의 몫만은 아니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고, 그렇기에 잘 되기를 바랐던 때문이지요.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그 친구는 수시 논술전형으로 그 노력에 합당한 학교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진심으로 그 친구의 결과에 기뻐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경사가 있으면 온 친척이 모여서 식사를 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떤 일인지도 모르고 그저 좋아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적어도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옛말이 맞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아왔었고, 심지어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 마음이었습니다.


축하해주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언젠가 서울에 가게 되어서 같이 인턴을 했던 동생을 만났습니다. 만나기 몇 주 전에 같은 회사에 최종면접을 함께 봤었고, 만나기 바로 전날에 그 결과가 나왔던 차였습니다. 아쉽게도 그 동생과 저 모두 좋은 소식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당연하게 우리는 만나자마자 그 얘기를 했습니다. 동생은 혹시나 제가 합격을 했는데 자신만 떨어졌을까 봐서 조마조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와 같이 면접을 본 다른 친구가 합격을 하여서 기분이 복잡하고 미묘하다고도 했습니다. 분명히 기쁘고 축하해줄 일이고, 그래서 축하를 해주고 싶은데, 마음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편한 무언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에 공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전공인 신문방송학에서 SNS는 아주 중요한 연구대상입니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가장 영향력 있는 뉴미디어이기 때문이지요. 수업에서 SNS를 다룰 때마다 귀에 박히도록 들은 역기능은 바로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조금 더 편하고 쉽게 이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타인으로 하여금 자존감을 깎고 좌절하게 하죠. 분명히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배웠는데 어느새 이 사회는 기쁨을 나누면 친구를 잃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은 일이 생기고 기뻐하고 싶어도 우리는 어느새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에 최종 전환면접에서 떨어진 저와 동기들 때문에 합격한 동기들은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저랑 가장 친했던 동기들은 오히려 우리를 불합격시킨 회사에게 실망하고 화를 낼 정도로 그 합격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SNS에 합격소식을 알릴 수도 없었고, 합격을 해도 동기들과 주변에 취준생인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탈락한 사람들의 슬픔에 먼저 공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기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까지 기쁨을 나누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절대로 우리의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옛날보다 더 적은 자리와 더 적은 자원 탓에, 우리는 이제 기쁨을 쉽게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에 대한 희소성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기쁨에 쉽게 공감해주기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남이 먼저 가진 것을 나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이 먼저 가져서 내가 가질 수 없을 수도 있게 된다면, 그것은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는 세상, 다시 올까요?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통해 박탈감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통해 타인에게 박탈감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후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제 주변 사람들은 전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아무것도 얻지 않는 것을 통해서가 아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사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세상엔 기쁨이 두 배, 세 배로 넘쳐나겠지요. 그때가 된다면 어린이들에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말입니다.






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