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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Apr 06. 2023

EP13 바르샤바 라이프 제2막 커튼을 올리며

바르샤바에서 쓰는 열네 번째 청춘일기

2023년 1월 24일

오늘은 내 23번째 생일, 매년 오는 생일이지만 바르샤바에서 맞이한 이번만큼은 조금 특별하다.


물론 우린 매일 행복할 자격이 있지만 누구나 생일엔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생일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찾는다. 한국에 있을 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곤 했는데 오늘은 그럴 수 없어서 괜히 마음 한편이 헛헛했다.

하지만 내겐 바르샤바가 선물해 준 가족이 있다.

바로 내 소중한 친구들!


내 생일을 위해 준비한 고마운 마음들과 시험기간에도 기꺼이 내준 시간들, 그 덕분에 올해 생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한 날이 됐다. 밤새 함께 먹고 이야기하고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까지 부르고 나니 헛헛한 마음에 온기가 가득 찼다.


23살, 이젠 정말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진 조용한 생일보다 왁자지껄한 생일이 더 좋은가보다.


2023년 1월 30일

오늘은 톡파원 25시 폴란드 바르샤바 편 방송날이자, 내 첫 TV 데뷔날이다..! (데뷔라는 단어가 좀 부끄럽긴 하지만)


한국 시간으로 저녁 8시 50분 시작이라 폴란드에 있는 난 오후 12시 50분만 애타게 기다렸다. 폴란드 TV엔 JTBC 방송은 나오지 않아서 본방송을 볼 순 없지만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시계가 오후 12시 50분을 지나고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내 작은 휴대폰 화면 안에 TV 속 내가 보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온갖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오후에 있는 Cover up 시험공부를 해야 해서 다 보진 못 했지만 이상하게 TV 속 내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Cover up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와서 바로 성적을 확인했다. 2.5(Fail)에서 5(Pass)로 바뀐 걸 보고 육성으로 "Yes!!"를 외쳤다. 그리고 시험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읽지 못했던 친구들과 친척들의 수많은 연락을 확인했다. 내 사진과 영상과 함께 방송 너무 잘 봤다는 따듯한 메시지가 가득했다.

모든 메시지에 고맙다는 답장을 하고 나도 얼른 재방송을 찾아봤다. 1시간 30분의 방송이 끝나고 다음 편 예고가 나왔다.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잘 해낸 내가 대견했다. '방송 잘 나와야 할 텐데..' 하면서 맘 졸였던 지난 몇 달이 생각나면서 한 편으론 후련하기도 했다.

오늘 난 모든 시험을 Pass 하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겨울학기 종강을 했다. 그리고 2달 남짓 준비했던 JTBC 톡파원 25시 바르샤바 편 방송까지 무사히 마무리했다.


바르샤바 라이프 2막을 시작하기 위한 산봉우리를 2개나 넘은 것이다. 그것도 잘!!


오늘 내가 해낸 일들 덕분에 남은 산봉우리도 다치지 않고 잘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두려움 보단 설렘이, 불안함보단 용기가 새록새록 피어났다.


2023년 2월 8일

룸메이트 친구 제라와 함께하는 마지막 파리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항상 같이 바르샤바로 돌아왔던 친구 없이 혼자 바르샤바에 도착하니 집처럼 느껴졌던 이곳도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맨날 작다고 하소연했던 집도 어찌나 크고 휑하던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친구가 두고 간 편지가 눈에 띄었다. 바로 읽으려다가 조금 울컥할 것 같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꺼내 읽었다. 눈물이 송글 맺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편지 덕분에 마음이 진정됐다.


지난 반년 동안 바르샤바가 집처럼 느껴졌던 건 룸메이트 친구, 그리고 친구와 함께 있던 시간이 내게 고향이자 집이 되어줬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바르샤바를 낯설게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하지만 반년 만에 다시 느끼는 이 낯섦이 오히려 반갑다. 다시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성장해 나갈 나를 기대하기에!


그렇게 나를, 내 새로운 시작을 조용히 응원하며 조금은 쓸쓸한 밤이 지나갔다.


2023년 2월 11일

내게 남은 제일 큰 산봉우리 하나, 바로 비자 만료 후 폴란드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것.


한국인의 경우엔 폴란드에서 90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지만 그걸 증명하기 위해 비자 만료 전 비셍궨국가로 출국했다가 비자 만료 후 재입국해서 여권에 스탬프를 받아야 했다. 준비 중인 거주증이 생각보다 늦게 나올 것 같아 얼른 비셍궨국가인 영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았던 2박 3일 영국 여행을 끝내고 드디어 오늘 바르샤바로 재입국했다.


지난해 9월 23일 처음 바르샤바에 도착했을 때 입국심사를 받았던 곳에서 똑같이 입국심사를 받았다.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우왕좌왕했었는데 한 번 해봤다고 경험치가 생긴 건지 이번엔 제법 능숙하게 해냈다.

마침내 22년 9월 23일 폴란드 입국 도장 밑에 23년 2월 11일 폴란드 입국 도장이 찍혔다.


바르샤바 라이프 제2막의 시작을 알리는 그 커다란 도장을 보니 작년 바로 여기서 느꼈던 그 설렘이 다시 느껴지면서 앞으로의 날들이 새삼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

 

2022년 2월 19일

오늘은 지난 6개월 동안 내 집이었던 곳과 안녕을 하고 온 날이다.


플랫을 떠나 기숙사에 들어온 지는 벌써 5일 정도 됐지만 짐 정리하랴 개강 준비하랴 정신이 없어서 집주인아주머니를 찾아뵐 시간이 없었다. 아직 방 열쇠도 드리지 않은 참이라 열쇠 드리는 겸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젠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이곳에 도착하자 고향집 온 것 마냥 편안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또 유난히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을 한 동네 곳곳이 너무 반가워서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집주인아주머니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 포옹을 했다. 참 친절하시고 따듯하신 분이라 항상 고마웠는데 내 마음이 마지막 포옹으로 잘 전달되었길 바란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됐다. 한 번 더 눈에 담아서 좀 더 오래, 좀 더 선명하게 이곳을 기억하고 싶었다.

낯선 바르샤바를 내 집처럼 느끼게 해 줬던 사람들과의 기억이 가득한 참 고마운 곳


이젠 진짜 안녕

2022년 2월 20일

드디어 오늘,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두 번째 개강을 맞이했다!


저번 학기에 첫 수업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내가 여기서 두 번째 개강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어느새 너무나 익숙해진 바르샤바 대학교 캠퍼스에서 정신없는 월요일 아침, 개강날 아침을 맞이했다.


폴란드어 수업이 내 두 번째 학기의 첫 수업이었다. 어렵지만 재밌고 재밌지만 어려운 묘한 매력을 가진 언어다. 이번 학기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에 돌아갈 때쯤엔 폴란드 친구와 가족들에게 내 고마운 마음을 폴란드어로 표현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개강을 맞이하기까지 참 일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두 번째 학기를 시작하게 됐다.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면서 후회 없이 여름학기를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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