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배우들이 있다. 나오는 작품마다 기대만큼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오늘은 정려원 배우의 필모 중 추천작 3편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특징이 있다면, 전부 법정물이라는 점?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마녀의 법정'이다.
2017년에 방영된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이 14%가 넘을 정도로 인기리에 방영됐다. 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출세 고속도로 위 무한 직진 중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강제 유턴 당한 에이스 독종마녀 검사 마이듬과 의사 가운 대신 법복을 선택한 본투비 훈남 초임 검사 여진욱이 여성아동범죄전담부에서 앙숙 콤비로 수사를 펼치며 추악한 현실 범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법정 추리 수사극이다.
캐릭터 소개에서도 나오듯 이 작품의 차별성은 기존의 성별 클리셰를 뒤집는 여주, 남주의 캐릭터성에 있다. 정려원 배우가 맡은 마이듬은 가난한 형편에서 독하게 살아남은 에이스 검사로, 공감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다. 이런 마이듬의 성격은 성소수자인 대학 조교가 여성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재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에피소드가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놓고 성별 미러링을 한 작품이다. 이렇게만 보면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작가는 마이듬이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다가 직접 몰카 피해자가 되고 나서 겪는 감정선과 행동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주인공의 외적, 내적 성장을 잘 그려낸다. 마이듬과 여진욱의 과거 서사도 뻔하듯 뻔하지 않게 그려내서 메인플롯과 서브플롯이 적절하게 섞인다. 한마디로 짜임새 좋게 잘 만들어서 재밌는 작품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여진욱 캐릭터는 전형적인 이성적인 주인공 남주 옆에서 감성적인 모습으로 답답한 고구마를 선사하는 여주 포지션이다. 하지만 성별전환이 왜 클리셰 비틀기겠는가. 성별만 바뀌었을 뿐인데 답답한 고구마 인간이 무해한 남주로 변모해 당시 소소한 인기몰이를 꽤 했다. 여주를 막아설 때 신체 접촉이나 소리를 높이지 않고 앞서 나가서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2023년에 봐도 충분히 트렌디하다고 느낄법한 앞서나감이었지만, 작품성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이 작품.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번째 작품은 '검사내전'이다.
2019년에 방영된 이 작품은 원작이 있다. 원작 제목도 '검사내전'인데 미디어 속 화려한 법조인이 아닌 지방도시 진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킬포는 이 원작을 쓴 평범한 검사를 표방하던 저자는.... 국회의원이 됐다^^)
범람하는 법정 드라마와 다르게 진영지청을 배경으로 했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다. 배경이 소도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의 삶이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데, 그걸 보는 게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은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 이선균 배우가 맡은 이선웅 역인데... 빛이 나는 건 정려원 배우가 맡은 차명주 역이라 추천 작품에 넣어봤다.
참고로 이선균 배우과 정려원 배우의 로맨스는 없다. 이 드라마는 노맨스 드라마다. 이선웅은 검사 10년 차로 유부남이다. (아들 관련 에피소드도 나옴) 이선균 배우가 연기한 역할치고 드물게 굉장히 멋없이 나온다. 사내 연애가 없다는 점도 현실감 있어서 좋았다. 일상을 가볍게 그려낸 드라마라 부담 없이 보기 좋다. (즉, 극적인 재미가 엄청난 작품은 아니다) 그래도 이런 법정물도 있어야 뻔하지 않지 싶은 맘이랄까?
마지막 작품은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마 모르는 분도 꽤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22년에 디즈니 오리지널로 공개된 작품인데 홍보가 적은 건지 화제성이 크지 않아서 조용히 묻혔다. 이미 법조인으로 이미지 소비가 꽤 된 정려원 배우와 마찬가지로 변호사 짬밥 좀 있는 이규형 배우가 주연인 데다가 작년에 유난히 법정물이 많이 나와서 후킹 포인트가 없던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도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물어뜯는 독종 변호사 ‘노착희’와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별종 변호사 ‘좌시백’, 극과 극인 두 변호사가 함께 일하며 맞닥뜨리는 사건 속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법정 미스터리 드라마인데... 정려원 배우는 이번에도 독종 캐릭터인 노착희를 맡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뭐야... 또?' 싶은데 신기하게도 비슷한 듯 전작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게 정려원 배우가 가진 힘이지 않나 싶다.
기대감 없이 시청했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짜임새가 좋았다. OTT 답게 욕설도 나오고, 자살 장면 등 꽤 자극적인 장면도 나오는 데 그 수위가 적절해서 OTT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욕설이 눈살이 찌푸려지는 느낌이 아니라 '아 진짜 저 상황이면 저런 욕이 나오지' 싶달까. 노착희가 가진 욕망도 할머니의 소원과 연결되면서 인물이 입체성을 가지게 된 것도 주인공 착희의 변화를 응원하게 되는 장치로 적절하게 작용했다. 적대자 캐릭터나 범인 찾기 같은 서스펜스 유발 설정도 좋았다.
신선한 작품은 아니지만, 우리가 아는 그 느낌을 잘 살린 작품이다. 요즘 이 정도도 못 살린 드라마가 많아서 다 보고 나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