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의 욕구가 존재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 욕구, 존중욕구, 자아실현 욕구.
이 욕구 단계설로 미뤄보면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존중받고 싶고, 성장하고 싶으니까.
나는 승부욕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체육시간에 피구 시합을 하면 대충 공에 맞고 옆에 가서 쉬는 그런 아이. 졌다고 분해하지도, 이겨보겠다고 이를 악물지도 않는 그런 아이.
그랬던 내가 타인의 인정을 받아 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첫 순간은 대학생 때였다. 과에 유명한 교수님이 한 분 계셨다. 당시에는 유별나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가학적으로 수업을 하시던 분이었다.
그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가학성을 드러내는 걸로 유명한 전설 같은 존재였다. 그 교수의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초면인 선배들과 동질감으로 하나가 될 정도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학생이 실수를 하면? (메일을 보내는데 예의가 없었다는 식의 그런 실수)
문제의 그 교수는 실수한 학생을 앞에 세워놓고 그 수업을 듣는 모든 동기에게 이 학생의 실수를 하나씩 말해보라고 시키곤 했다. 일종이 조리돌림이었다. 선배가 공지를 늦게 올렸다? 신입생 수업에 불려 가 사과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의 불행은 그의 눈에 띄면서부터 시작됐다. 학기 초 첫 수업. 수업 말미, 학점과 관련해 질문을 하라고 해서 질문을 했는데 갑자기 나보고 기본도 없는 사람이라며 화를 버럭 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그때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책상이 앞가림이 없어서 그게 보였단다. 이 행동에 대해서는 자필편지로 석고대죄를 하였다) 당시, 내 입장에서는 질문을 하라고 해서 했는데 왜 화를 내? 싶었는데... 그날 이후로 교수의 꾸짖음은 계속 됐다. 그 시절의 나는 계속 나를 무시하니,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동기들이 강철멘털이라고 할 정도로 교수가 하라고 하는 무리한 과제를 기어코 다 해냈다.
그즈음 모두가 내게 "괜찮냐"는 말을 인사처럼 건넸다. 몰랐던 내 모습도 많이 발견했다. 평소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을 해서 살이 찌는 편이었는데, 스트레스가 한계선을 넘어가니 밥을 넘기지를 못했다. 그 교수 수업을 듣는 학기에 살이 7킬로가 빠졌다. 과 자체가 작고 전공 교수에 학생과 교수의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환경 탓도 컸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고 교수는 내가 A+을 주며 잘했다는 칭찬을 건넸다.
당시에는 아, 내가 정말 해냈구나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그 교수님 덕에 많이 배웠다며, 고맙다고 말하는 날 보며 친구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이냐고 걱정할 때도 귀에 잘 안 들렸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생각해 보니 친구들이 맞았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내가 당한 대우는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대우였다. 그런 대우를 견뎌가며 얻어낸 인정에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나는 정말 그 시간 동안 뭘 배웠을까.
내가 극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이란 거?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교수의 꾸짖음이 두려워 참지 않아도 될 것들을 참아낼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했고, 그 대가는 꽤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