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직업은 방송작가였다.
졸업학기에도 취업준비가 진행 중이던 나는 학점을 일부러 남기고 5학년이 됐다.
당시 내 꿈은 '메이저 신문사' 기자였다.
글밥을 먹고 싶었는데 창작은 나의 영역이 아닌 것 같고, 저널리즘 글쓰기는 노력하면 될 것 같았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꽤 의미 있는 생각도 했더랬다.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건 대학교3학년. 이때부터 내가 한 대부분의 선택은 기자가 되기 유리한 스펙으로 귀결됐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겠다며 하루를 풀로 채워서 살다 보니 친한 친구들은 헤르미온느냐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확실히 지금 다시 가지려고 노력해도 생기지 않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그 시절 나는 내가 잘 될 거라는 근자감에 가까운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평범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이렇게 열정이 넘치니 아르바이트 하나도 대충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소서에 쓸 수 있는 걸 해야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여전히 대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평일 알바를 하면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부탁하는 것도 어려웠다. 아빠는 졸업할 시기에 졸업을 안 하고 취업도 바로 못하는 딸을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나 게으르게 준비했으면 졸업도 못하냐"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걸 끝까지 납득하지 못했다.
"기자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취업 못하겠으면 대학원이나 가라"
->헛바람 들어서 시간만 축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저렇게 까지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본가에 가면 저런 마음이 너무 느껴졌다. 내 진로를 부모님께 허락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저 모든 말들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헛꿈을 꾸는 게 아니고 혼자서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고.
하지만 만약 저때로 돌아간다면 자존심을 굽히고 도움을 받긴 했을 것 같다. 알바와 병행하는 취준은 아닌 경우에 비해 난이도가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 쭉-알바인생이었기에 자신이 있었음에도 불안한 미래, 소모되는 체력이 합쳐져 쉽게 조급해지고 부정적인 기운이 나를 집어삼켰다. 드라마 속 힘들어도 웃으며 목표를 쟁취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꽤나 버거운 발버둥을 쳐도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시절,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지
부모님이 공부만 하라고 해서 알바를 못해봤다며 경험이 중요하니까 자식들은 꼭 알바를 시키고 싶다는 분을 본 적이 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울컥 화가 날 정도였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일하는 알바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방송작가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면접관으로 들어온 피디는 자신 있게 말했다.
"평일 수업? 당연히 듣게 해 줄 수 있죠~시간 유동적으로 쓰면서 자유롭게 일하실 수 있어요~"
그렇게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방송작가가 됐고 동시에 기나긴 방황기의 화려한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