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농촌

지역과 농촌은 같은 말일까.

by 정소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성공을 거두고 젊은 청년들이 시골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사례들이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막상 농촌에서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서울공화국에서 산다는 것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서울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지역에 산다는 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 친구들을 만났을 때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문화생활을 다양하게 해봤다는 점이었다. 음악 수행평가를 하러 예술의 전당을 가고 대학로에 찾아가 연극을 보는 것이 당연했던 친구들의 일상은 청소년회관에서 하는 소규모 공연이 최선이었던 내게 신세계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할 때도 그들과 나는 시작점이 달랐다. 매달 부담하는 50만 원 정도의 월세가 부담스러워 본가에 내려가면 취준에 필수였던 스터디도, 서울에선 종종 다니던 학원도 다닐 수가 없었다. 서울이 좋아서 서울을 갔던 스무 살 초반과는 달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서울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집밥을 먹으며 월세 걱정 없이 사는 서울 친구들과 월세를 벌어가며 준비를 하는 내가 동일 선상에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지역 인프라 개선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내게 제안이 왔던 일은 지역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지역 잡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취재기자로 참여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지역문화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농촌이지만 지역 문화의 카테고리 안에 있으니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지역과 농촌은 동일어가 아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서울과 지역의 차이만큼 도시와 농촌의 차이는 컸다.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묶이기엔 삶의 모습이 달랐다. 농촌 무지렁이 상태로 살게 된 농촌에서는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제일 크게 다가왔던 건 인구수의 중요성이었다. 살면서 내가 사는 곳의 인구수를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농촌에서는 인구수가 중요 이슈였다. 인구 50만이 사는 지역과 5만이 사는 지역은 문화 접근성부터 차이가 크게 났다. 내가 지내던 곳에는 영화관이 한 곳 뿐인데 그마저도 작은 영화관이라 보고 싶은 영화가 없을 땐 차를 타고 외지로 나가야만 했다. 면단위에서는 목욕탕을 가는 게 어려워 목욕탕 설립 여부가 핫이슈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마저도 앞에는 '작은'이 붙었다. 최소한의 규모를 가진 시설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일상이 달라질 큰 변화였다. 동네에 또래가 없어 부모님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사교육은 그리 가까운 단어가 아니다.


농천에서 2030문화 인프라 만들기

나 역시 귀촌 후 제일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또래 찾기'였다. 문화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꿈꿨던 것 중 하나가 청년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마우스 두 번만 클릭하면 종류별로 모임을 고를 수 있던 서울과 달리 모임 하나 만들기 힘들었던 경험을 되살려 지역에 있는 20대를 찾아 취미에 맞게 모일 수 있는 오프라인 소모임 체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청년이 지역에 거주해야 하는데 (살짝 과장하면) 농촌에 사는 청년은 존재 자체가 기삿거리가 될 정도로 드물었다.


또, 청년이 산다고 해도 마을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그들을 찾아 모임을 추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젊은 층이 그나마 많은 공무원은 대부분 외지에서 출퇴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물어물어 찾으려면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드러나지 않는 청년은 연고가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농촌에서 가장 찾기 힘든 연령대가 20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청소년기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잘 지내던 학생들도 20대가 되면 망설임없이 도시로 향했다. 귀촌 후 알게 된 청소년 학생 중 고향에 남겠다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나 역시 이들에게 왜 고향에 머물지 않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런 대화를 하고 난 밤이면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비밀이 없을 것만 같은 특유의 분위기였다. 겉보기에는 도시처럼 보이는 읍내도 두 다리 건너면 다 알 정도로 동네가 좁았다. 당연히 말하나 행동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면식 없는 식당 사장님의 조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주워듣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취재를 업으로 해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휴일에도 지나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낯설음을 마주하다 보니 문득 무식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울 중심적 사고를 했던 친구들 몇 명이 떠올랐다. 모든 걸 서울 중심으로 말하는 이들. 당시에는 저럴수가 있나 싶었는데. 경험해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다. 지역을 경험할 기회가 너무 적었으니까.(필요가 없었거나) 내가 농촌에 대해 잘 몰랐던 것처럼.


지금은 여러 이유로 농촌을 떠났고, 내 경험이 모두의 경험일 순 없지만 20대가 살아가며 느낀 농촌에 대해 최대한 기록하고 말하고 전해보고 싶다. 기록하지 않으면 나조차도 지금은 귀하다 생각했던 감정과 경험들 잊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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