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성차별 사건을 보고

by 정소이

2021년 3월에 쓴 글


얼마 전 생리대 네고를 진행한 동아제약 면접에서 성차별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한 A씨가 브런치에 남긴 글을 보았다. 여성의 날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는 그는 일목요연하게 당시 상황을 적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내던 때가 생각나 카페에 앉아 지워놓았던 기억을 곱씹었다.


한참 언론사 입사에 매진하던 시절, 나름 수도권에서는 메이저 대접을 받는다는 언론사에 면접을 보러 갔었다. 갈 길이 멀어 이른 아침부터 정장을 차려입고 간 면접에서 면접관1은 예상 질문과는 다른 말들을 꺼냈다.


"우리(편집국에)는 남자가 많아요. 사실 남자 후배는 호칭도 그렇고 험한 말도 편하게 하기 쉽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뭘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일까. 복잡해진 머리와 달리 입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똑같이 편하게 대하셔도 괜찮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괜찮다는 뉘앙스의 답을 했던 것 같다. 뭐가 괜찮을까. 후배들에게 대놓고 막 대하는 게 괜찮을까. 남자가 여자보다 편하다고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게 괜찮을까. 아무것도 괜찮지 않은 자리에서 나는 밝은 표정으로 그들과 눈을 맞추었다. 면접 때 면접관 눈을 보며 말해야 좋은 인상을 준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들의 회사가 그 지역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던 면접관2는 채용 후 얼마나 빠르게 이사 가능한지를 물으며 대뜸 "미혼이니까 문제없지?" 라며 웃었다. 면접 중간 즈음 체념을 했다. 합격이 될 것 같지도, 되고 싶지도 않아졌다. 하나도 웃기지 않았던 그 면접의 마지막 질문은 "자기주장이 강한 편인가?"였다. 그렇다는 대답을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이미 합격할 것 같지도, 되고싶지도 않았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답한 뒤 나온 문 뒤에는 다음 여성 지원자가 앉아있었다.



자주 사용하던 클리어 파일이 있었다. 파일 앞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성차별 관련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여성학 수업을 들을 때 선물 받은 스티커였는데 마음에 들어 여기저기 들고 다니곤 했다.

광화문으로 출근을 하게 되어 설렘이 가득했던 인턴 시절. 경력이 화려했던 국장님이 있었다. 경력에 맞게 가르쳐주는 내용도 좋고 통찰력 있는 말을 자주해 잘 따르던 차였다.


부서 첫 회식이 있는 날 내 옆 테이블에 앉은 그는 술에 취했는지 주변 후배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주로 20대 여자 후배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페미니스트는 언론인이 될 자질이 없는 것들이라며 쓸데없이 페미니스트니 뭐니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해댔다.


다음 날 아침. 습관처럼 파일을 집는데 나의 인사고과를 평가할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던 파일을 나는 놨다. 그날 이후 나는 그 파일을 회사에 들고 가지 않았다. 그 기억은 그 회사를 옮긴 이후에도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일을 했다면 동일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조차 당당히 못하던 내 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상처를 남겼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사라진 줄 알았던 상처는 희미해졌을 뿐 흉터로 남아있었다.

A 씨는 글을 올리고 동아제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신상이 드러난다는 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부디 A 씨에게는 그날의 면접이 흉터로만 남는 상처가 아닌 변화의 시발점이 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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