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글이 말보다 진실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체화되지 않은 생각은 글로 발현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내용을 자신의 것처럼 글에 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거짓 글이란 단어는 없어도 거짓말이란 단어는 있으니까. 말은 공중에 흩어져도 글은 기록되니까.
요즘엔 그 사람이 기록한 글보다 기억되는 말 조각을 모아 상대를 바라본다. 사람보다 글을 먼저 접하면 대개는 반가움보단 실망감이, 여운보단 씁쓸함이 남았다. 저 사람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맞나 싶어 괜히 속상해지기도 한다. 내가 속았다 느낀 모든 글이 의도적인 거짓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글은 부분부분 진실이 담겼을 테고 어떤 글은 글 쓴 사람 스스로도 자신이 생각하고 믿고 지향하는 것들을 담았다 생각할테니. 하지만 그뿐. 일상에서의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하긴 글을 쓴다는 행위만으로 성찰이 가능해진다면 모든 문인은 성인군자겠지.
아름답다 평가받는 글을 쓰고 정의로운 사도처럼 남을 비판해 세간의 주목을 끌어도 가까이서 보면 본인이 비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소외된 것들을 대변한다며 희생을 자처하는 이도 가까이서 보면 누군가를 배척한다.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지 않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잘 듣고 잘 보는 것. 말은 그 순간은 거짓이 가능해도 일상에서의 말소리를 하나씩 주워 그의 행동과 맞춰보면 그 사람이 어렴풋이 보인다. 글보단 말이 말보단 행동이 그 사람을 잘 나타낸다 생각하는 이유다.
한동안은 그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글과 말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를 때 글을 그 사람의 속마음이라 여겼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무슨 사정이 있어서 저러는 거겠지 싶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건 생각보다 소모적인 일이었지만 그게 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는 길이라 믿었다. 불행히 이런 내 노력은 결실 없이 실망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험이 하나둘 늘어가며 난 그만 노력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유체이탈 해가며 글을 쓰는 이가 많고 심한 경우에는 진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행동해대는 사람도 많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사람은 입체적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난 너무 많은 비용을 들여 깨달았다.
왜 글을 더 믿었을까. 상대방의 속마음까지 알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충 보지 않고 상대에게 돋보기를 들이대 살펴본 후 진심만을 나누려는 욕심. 요즘은 그래서 (잘되지도 않고 맞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만을 보려고 한다. 찝찝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더는 그런 사람들까지 이해해주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