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by 정소이

요즘 글 쓰는 일이 잦아졌다. 자소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작문도 쓴다. 그러다 보니 한참 글을 쓸 적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몇 년 전 '기자 지망생' 시절. 현직 기자가 강의하는 작문 수업을 열심히 들으러 다녔었다. 강의실에는 수십 명의 '지망생'들이 있었고 어느 날은 그 중 몇몇과 택시에 할증요금이 붙을 때까지 뒤풀이를 하기도 했다.


고향, 나이, 성격, 취향 전부 다른 사람들이 '글'을 매개로 급작스럽게 모여 친분을 다지던 밤. 크게 친밀한 관계를 맺은 이도 없고 얼굴마저 흐릿하지만, 종종 그날의 대화가 생각난다. 어색함을 없애려고 아무 말이나 해대서 대부분의 말들이 허공에 흩어졌지만 몇 가지가 머리에 남았다. 왜 밤새 떠들어 대던 대화 중 그 몇몇이 기억에 남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촌 어딘가에 있는 작은 라면집이었다. 이미 1차가 끝나고 소수정예로 2차를 갔다. 주로 현직기자인 강사가 말하고 우리가 들었다. 언론인이 되고 싶은 지망생들이니 당연했다. 도움 되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기자가 되고 나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20대에 쌓아놓은 것들이 지식의 원천이 될 거라고도 했다. 쌓아놓은 게 없는 것 같아 속상했던 것도 같다.


강사가 하는 말들은 그 자리에서만큼은 대부분 정답이었다. 그렇게 '언론사 합격하는 글'에 대해 이야기가 시작됐을 무렵, 가만히 라면을 먹던 지망생1이 입을 열었다. 수업 시간에 받은 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당시 강의는 주제를 주면 그에 대해 글을 쓰고 강사가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제일 잘 쓴 글이 장원. 나머지는 점수로 채점됐다.


지망생1은 점수로 글을 매기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보였다. 강사는 글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강의의 목적이 언론사 합격인 만큼 정해진 틀이 어느 정도 있고 그에 따라 부여한 점수이니 문제가 없다 했다. 지망생1은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합격하는 글'을 쓰려 부단히 노력 중이었고, 퇴고에 대해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지적하면 고쳤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갔다. 당시에는 방법이 있다는데 저렇게 고집을 피우면 합격과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한데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도 종종 떠오르는 걸 보면 자신의 글에 애정을 갖는 그 모습이 좋았던 것도 같다. 이 일이 있고 한참 후 드라마 시놉시스 합평을 받은 적이 있다. 다년간의 언시 경험으로 타인의 피드백과 퇴고에 열린 마음이라 자부했건만. 나는 그날 하루종일 화가 나 있었다.


'소재가 뻔하다고?' '이게 너무 진지하다고?' '뭘 안다고 참 나' 하면서.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고민해봤지만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냥..앞으로도 누군가 내 글을 지적할 때 무심히 넘기는 글보다는 힘들더라도 마음이 아플 정도로 애정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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