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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Jul 22. 2022

치킨, 먹을 줄만 알았지 내가 튀길 줄은 몰랐다고요 2

*전에 발행했던 2편을 수정하여 새로 발행했습니다.



“어떻게 그래?”     


 저돌적인 추진력을 가진 남편은 어떨 때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마음 약한 구석이 있었다. 장밋빛 인생을 꿈꾸던 우리의 앞날은 형편없는 매출로 점철되었다. 두 명의 아르바이트를 모두 데리고 가기 힘들 거라 판단한 나는 한 명을 내보내자고 했다. 그랬더니 나온 남편의 반응은 저러했다. 우리가 필요해서 사람을 뽑아놓고 필요 없어지니 냉큼 자르냐는 거였다. 물론 너무 매몰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보아도 단시일 내에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철저한 계획하에 6개월 이상 버틸 자금을 미리 확보한 후 개업했다면 이렇게 조바심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2호점 개업으로 계획 이상의 자금을 쓴 터라 몹시 빠듯했다. 그러니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 1순위가 손님이 없다고 근무시간 내내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아르바이트의 인건비였다.     



 이렇게 흐지부지하다간 우리가 망하게 생겼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사정을 얘기하고 한 명을 내보내기로 했다. 남편은 또 고민했다.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와 50대의 여사님 중 누구를 내보내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간 CCTV로 지켜봤던 나는 20대 아르바이트를 지목했다. 손님이 없어도 한 번이라도 더 테이블을 쓸고 닦았던 50대 여사님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20대 아르바이트가 있어야 남자 손님이 온다며 내 의견에 반기를 들었지만, 우리 가게의 주요 고객은 젊은 남성보다는 중장년층이라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내 뜻대로 한 명을 내보냈다. 내보내면서도 정말 미안했다. 능력 없는 사장을 만나 3주밖에 일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때 깨달았다. 사장은 능력이 없으면 안 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아르바이트든 직원이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가 사장이란 자리인데 처음의 성공으로 우린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직원일 때 보다 사장일 때 느끼는 자리의 무게감이 점점 무겁게 느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책임감을 갖고 가게 운영에 대해 되짚어 보았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무엇이 잘못되었나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개업식을 하기 전에 누군가가 전단지 홍보를 하라고 해서 사람을 사서 근처 아파트 단지에 전단지를 붙였었다. 전단지 구석의 할인 쿠폰을 잘라서 가져오면 할인을 해준다는 문구도 넣었다. 하지만 회수된 전단지는 배포한 수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회수된 할인 쿠폰은 채 열 장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인쇄소 사장님의 말만 듣고 몇 십만 원을 들여 홍보했는데 소위 ‘돈지랄’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1호점 때는 홍보에 대해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잘됐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 될 거라고 너무도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냉장고에 붙이는 광고책자에도 홍보비를 들였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한 방식은 너무나 ‘올드’ 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데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고전적인 방식인 전단지와 광고책자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우습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40대 초반의 경단녀였고 홍보의 ‘홍’자도 몰랐고 광고의 ‘광’자도 몰랐으니 말이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나는 남편에게 치킨집에 관한 그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터라서 내가 치킨집을 살리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자주 이용했던 맘 카페가 생각났다. 글을 올리기보다는 정보를 얻기 위해 자주 이용했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느 동에 새로 치킨집이 개업했다고 할인행사를 하더라고 내가 아닌 척 글을 썼다. 내가 사장이라고 말하기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내 명의로 개업을 했던 터라 내가 사장이기는 했다. 바지사장.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올린 내 게시글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삭제되고 말았다. 댓글이라도 달리지 않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던 나는 실망감만 잔뜩 얻고 좌절해야만 했다. 카페 측에서는 홍보 글이라고 판단하여 삭제해 버렸고 내 아이디마저 활동 정지를 해 버렸다. 그것도 한 달간이나 말이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상호명도 언급하지 않았고 그냥 치킨집이라고 했는데 나처럼 어리숙한 초보가 쓴 글은 매의 눈을 가진 운영자에게 딱 걸려버린 것이다. 아, 그때의 참담함이란.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 아, 말 그대로 창피해 죽을 뻔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가게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눈에 띈 게 있으니 바로 배부하고 남은 전단지였다. 4년 전만 하더라도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에 크게 반감은 없었다. 대전 은행동만 하더라도 길에 널리고 널린 게 각종 전단지였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손에 쥐어지는 게 전단지였다. 나는 전단지를 한 움큼 들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거리로 나섰다. 오늘 치킨을 팔지 못하더라도 손에 쥔 이 전단지만큼은 다 뿌리고 말리라. 물론 과태료 걱정에 살짝 마음이 움츠러들긴 했다.



 결연한 마음과는 달리 막상 걸어오는 사람에게 전단지를 전해주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말을 떼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버렸고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러기를 몇 번 먹자골목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저 커플은 안돼. 나를 무시하고 지나갈 거야. 저 아줌마도 안돼. 발걸음이 빠르잖아. 학생도 안 되겠지? 치킨을 사 먹을 돈이 있을까? 내 어깨는 점점 처졌고 나의 결연한 의지도 점점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나에게 용기를 준 그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옛날 통닭집이 오픈했어요.”

 정확히 8대 2 가르마를 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분께 전단지를 들이밀었다.

 “맛있는 치킨과 시원한 맥주가 있어요.”

 어느새 내 손에서 중년 남자분의 손으로 전단지가 건너가 있었다.

 “언제 오픈했어요?”

 “얼마 안 됐어요.”

 “어디 있어요?”

 “저기 00 치킨이에요.”

 “이봐, 저기 옛날통닭집 오픈했대. 새로 생겼다니까 가볼까?”

 조금 뒤에서 걸어오시던 일행에게 의사를 물으셨다. 일행분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까지 나의 심장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가 봅시다.”


 첫 번째 나의 호객행위는 성공했다. 나는 손님을 가게로 안내했고 우리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약간 매콤한 옛날 치킨을 추천했다. 곧 맥주 잔의 추가 주문이 들어왔고 나는 주방을 향해 ‘맛있게 튀겨주세요!’ 하고 소리쳤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곧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치킨과 맥주가 손님 앞으로 대령했고 손님은 닭다리 하나를 뜯어서 입에 물었다. 쿵쾅쿵쾅.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홀에 흘러나오는 음악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이 집 치킨 맛있네! 사장님, 내가 손님 많이 데려올게요.”

  손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나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우렁차 졌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성공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또 가게 앞으로 전단지를 들고나갔다. 그리고 목소리를 더욱 크게 냈다.


 “맛있는 치킨과 시원한 맥주가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시도하지 않고 망하는 게 더 창피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갖고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용기 주머니에서 용기를 꺼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길 위에 계속 뿌려댔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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