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증명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해리 포터' 시리즈

by 수련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 계절에 생각나는 영화 몇 편이 있다. 그중 최고는 당연히 '해리 포터' 시리즈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추워진 공기를 한껏 느끼며 오랜만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최종장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까지 다 봤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대한 감상이 달라진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렇다. 작년에는 이 시리즈를 정주행 하며 지나간 추억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눈물 지었다면 이번에는 주인공 해리가 느꼈을 무한한 고독과 영원히 그에게 남았을 깊은 마음의 상처에 공감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는 천애 고아다. 다들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부모님은 살해당했고 11살까지는 극악무도한 이모부와 이모의 집에서 아동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여기까지의 설정만 해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하지만 주인공 서사가 이 정돈 되어야 스토리 진행에서 많은 할 말이 생긴다.


물론 해리가 그냥 불쌍하게만 자라다가 짠! 하고 마법사 세계로 복귀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그에게도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지낸 잠시의 시간이 존재한다. 해리가 평생을 사는 동안의 계절에 비하면 새발의 피와도 같은 찰나의 시간에 해리는 죽을 때까지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했던 사랑을 다 받았다. 사주로 따지면 초년운이 아주 잠깐 반짝 좋았던 거다.



믿음, 사랑, 소망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죽음조차 이기는 강렬한 사랑의 열매가 바로 해리였다. 사랑의 증명 그 자체였던 아기 해리가 모든 시리즈를 거치면서 온갖 고난과 역경, 풍파와 시련을 겪으며 자라는 모습을 보여준 조앤 롤링 여사는 사람 사는 인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 사는 게 녹록지가 않다. 좀 잘 되는가 싶다가도 안 된다. 분명히 이럴 리가 없는데, 이렇게 되어버린다. 내 뜻대로 되는 거라고는 내 손으로 누르는 리모컨 버튼 하나뿐인 것 같다. 롤링 여사가 해리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인생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역사에 다시없을 사랑으로 보호받아 살아남은 해리는 그 아성과는 정반대의 시간 속에 자랐다. 해리는 사람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전부를 차가운 외로움과 상처 속에서 지냈다.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죽마고우와 어른들과 함께 할 때도 해리는 철저히 혼자인 아이였다. 그가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덤블도어와 시리우스도 해리가 보는 앞에서 떠나니 말이다.





마법사의 돌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가 열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해리는 호그와트를 자신의 '집'이라고 말한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모님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호그와트가 해리에겐 부모님의 품속처럼 안락하고 따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해냈는지를 증명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는 역대급 악당인 볼드모트를 무찌른 어린 마법사가 자신임을, 그다음에는 비밀의 방 문을 연 슬리데린의 후계자가 자신이 아님을, 그리고 아즈카반을 탈옥한 죄수 시리우스가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 스스로 불의 잔 속에 이름을 적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모든 사실을 증명해 냈을 때 비로소 해리는 모두에게 박수갈채와 포옹, 따뜻함 어린 시선을 받았다. 반대로 진실을 밝히기 전까지는 살을 에는 멸시와 경멸을 받았다.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인 론까지도 해리에게 너네 부모님은 하늘나라에 가셨겠지!라는 역대급 패드립을 했다. 그런 새끼도 친구라고 나중에는 용서하고 화해하는 해리가 대단하다.





해리 포터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대부분 그와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해리가 문제를 일으킨 범인으로 오해와 미움을 받았다. 해리는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해결하려고 덤벼들었고, 단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매번 일이 터지는데 늘 해리가 그걸 해결하고 돌아온다. 오해도 다 푼다. 적어도 그런 일이 두 번 이상 반복되면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해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믿어줄 법도 한데, 무려 4번째 시리즈까지도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 같으면 더러워서라도 "아, 이젠 나도 모르겠으니까 너네 마음대로 생각하고 알아서 하라고!"하고 그 모든 문제에서 신경을 꺼버렸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니까 문제가 생기겠지. 그래서 롤링 여사가 해리의 캐릭터를 주저하기보다는 맞서고 부딪히는 용감한 그리핀도르의 학생으로 설정한 거겠지만, 그래도 말이다. 그래도 너무 하다. 해리는 이야기가 시작하고서부터 끝날 때까지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임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나는 론을 별로 안 좋아한다. 해리와 헤르미온느 사이에 껴서 오만 열등의식에라도 쩔었는지 하는 꼴을 보면 미울 때가 많았다. 나는 론이 그렇게 마음껏 미운 짓을 할 수 있었던 건 위즐리 부부의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짓을 해도 그를 아껴주고 이해해 줄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론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해리는 그렇지 못했다.


볼드모트에게서 살아남은 아이, 볼드모트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되는 아이, 결국엔 볼드모트를 소멸시키고 마법사 세계를 위기에서 구해낸 아이 해리 포터. 그렇기 때문에 모두의 칭송과 사랑을 받은 아이. 그렇기 때문에 지독히도 외로웠던 아이 해리 포터.


아무런 수식 없는 해리 포터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면 그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받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끊임없는 긍정과 인정을 받기 위해 올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삶이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의 호감을 얻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만이라도 나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람 사는 인생에 오직 사랑 하나면 충분하고, 그걸로 만족하다.'라고 하며 미소 짓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하게 버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세계에서 나를 무조건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하지 않을 때도 눈빛으로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상살이 가 제법 넉넉하게 느껴진다.


사실 오래전에는 그들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이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줄로 깨달았다.


지금은 해리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예전부터 해리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티가 덜 난 거였으면 좋겠다. 내가 보고 생각한 것만큼 해리가 외로운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매년 겨울에 만날 그 아이가 지금은 애쓰지 않고 되는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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