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영원한 친구!

오, 행복한 마음?

by 수련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친구 하나가 있다.


언제부터 친구였다~라고 정확히 말할 수도 없고, 어떤 계기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늘상 붙어있다보니, 얘가 내 옆에 있는지도 없는지도 의식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 친구는 내가 어딜 가서 뭘 할 때, 특히 맛있는 안주에 시원한 술을 곁들일 때는 자리를 비운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 마시는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난데, 얘는 그때마다 꼭 자리를 비우고 없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나 좋아하는 서점에 갈 때,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볼 때도 얘는 코빼기도 안 내비친다.


이 친구와 주로 같이 있을 때는 운전을 할 때다. 같이 드라이브를 즐긴다고나 할까. 아니, 얘랑 있으면 즐기지는 못 한다. 혼자일 때보다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이 있으면 도 이런 저런 말을 해대서 정신을 쏙 빼놓으니까 나도 모르게 앞 자동차 꽁무니에 내 자동차 이마를 들이받진 않을까 조마조마고, 얘기를 듣다가 인터체인지를 놓쳐 길을 한참 돌아간 적도 여러 번이다.


그리고 이 녀석이 글쎄, 요 몇 달 새에는 꼭 밤늦게 찾아와서 같이 있으려고 성가시게 군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잠자는 일이었는데 얘 때문에 근래 수면의 질이 확 떨어졌다. 잠만 자려고 하면 또 그때 그렇게 많은지 속닥속닥 떠들어대니까 원체 말 많은 나는 별 말 다 꺼내어 맞장구치게 되는 거다.




누가 보면 그럴 것이다. "이런 애랑 도대체 친구를 왜 해?" 예전에 괴상한 지인 하나를 계속 만나던 나에게 어릴 적 소꿉친구가 이렇게 말을 했다. "수련아. 네가 이상한 사람을 쭉 만나게 되면 주변에서 볼 때 너도 그 이상한 사람과 똑같이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너 걔 만나지 마." 일리 있는 말이다. 유유상종, 근묵자흑, 도긴개긴, 또이또이(?) 이런 사자성어들이 괜히 있겠나? 그런데 나도 그 정도 사람 보는 눈은 이제는 있다. 그런데 얘는 만나고 싶지 않아도 만날 수밖에 없다. 나도 정말 안 봤음 싶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 친구의 방문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이 친구를 떠올리면 언짢은, 불쾌한, 불편한, 거북한 등 이런 부정적인 단어들이 생각난다. 얘한테는 저런 단어들이 참 잘 어울린다. 이렇듯 같이 지내봤자 하등 좋을 것 없는 이 친구는 내가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 있는 그런 애가 아니다. 내가 윽박지르고 염병을 떨면 더 한 술 뜨는 어마무시한 녀석인데다, 몇 년은 그냥 모른 척 무시도 해지만 몸집을 잔뜩 불리서 못 본 척도 못 하게끔 눈앞에서 알짱거리한 놈이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얘를 안 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것인데 늘 매 순간 위에 나열한 일들만 즐기며 살 순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 친구는 나에게 빈 시간만 생기면 어떻게든 알고 득달같이 쫓아와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얘를 잘 달래서 데리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냥 체념하고 이 관계에 초연해지기로 했달까?


그래서 도대체 얘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소개하겠다. 이 친구의 이름은 '불안'이다.




기억조차 안 날 만큼 오랜 시간동안 나의 단짝 친구로 함께 했던 불안이와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중이다. 누구에게나 불안이라는 친구가 하나씩 있는 건 아는데, 나는 남보다 좀 더 불안이에게 약한 타입이다. 얘가 와서 말을 걸거나 징징거리면 5번 중에 3번은 허물어진다. 그래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예전엔 얘가 지랄하면 하는대로 다 받아는 개호구였다.


몇 번이고 불안이와 손절해보려고 했는데 정말 잘 안 됐다. 한 몇 일 안 보나 싶으면 어디서 갑자기(대부분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다) 나타나서 얼굴을 내밀고, 잠깐 만나고 가는 정도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데 어쩔 때는 한며칠을 머물렀다가 간다. 초대도 안 했는데! 더 심한 건 내가 이보다 어릴 땐 그게 당연한 건 줄 알고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불안이랑만 노느라고 일주일 동안 내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다. 걔가 그러자고 하는 게 당연한 건 줄 알고.


불안이는 이런 친구다. 가라고 해도 안 가고, 오란 적도 없는데 와서는 나를 못살게 구는 친구. 얘가 나한테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서는 모른 척도 해보고, 없는 척 가장도 해봤지만 이 친구의 존재감을 무시하기가 참 어렵더라. 그래서 우리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완전히 떼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렇게 어렵더니만 한 번 인정하니까 가슴 어딘가가 시원해졌다. 기왕 같이 지내는 거 잘 지내보자고 그랬더니 오히려 얘가 좀 당황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나의 불안이와 이렇게 지낸다. 영원한 친구라 생각하며 살살 잘 달래는 기술이 늘었다. 이 녀석이 염병 지랄을 떨 때는 그냥 그대로 냅두면 되더라는 것을 아니까 이전만큼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다만 이런 애랑 계속 친하게 지내면서 소소하고 지속적으로 마음 고생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속 시원하게 말하기는 아직도 수치스럽다. 그래서 이렇게 줄줄 뒷담화 하는 글을 쓴다. 이렇게라도 하니까 좀 나은 거 같다. 아마 이 글을 쓰는 걸 불안이도 아는 것 같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저에 대한 욕을 하니까 쪽팔린 건지 지금은 어디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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