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E1이 부릅니다. I don't care.

너무 심했어. 너, 무심했어.

by 수련

상담을 하러 와서 풀 죽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한숨을 폭 쉬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태도는 어른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른이 아이보다 좀 더 나은 게 있다면 어른들은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꽤 정확하게 이야기하며, 그에 대한 해결책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른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러니까 13살짜리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서른이 넘은 성인 남성과 비슷한 분위기는 풍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 문제에 대해 그만한 성찰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분이다.


늘 항상 상담을 할 때마다 진심을 다해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공감을 해준다. 그 어떤 문제라도 괜찮다! 말해봐! 선생님이랑 같이 해결을 해보자! 다 들어줄게! 이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기죽은 아이들을 만나야 애들도 덩달아 신이 나는 법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이니까) 약간의 코칭을 곁들여 상담을 한 회기, 한 회기 진행하다 보면 "쌤이 지난번에 이렇게 하라고 해서 했더니 진짜로 잘 됐어요!" 하는 순간이 온다.


어른들한테 하는 것처럼 모든 걸 애들한테 전적으로 다 맡겨두긴 어렵다. 자기 나름의 곤경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올바른 치트키, 노하우를 가르쳐 주고 잘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리고 그 방법을 활용하는 융통성은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나을 때도 많다.

각자 어려운 문제를 안고 오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도우려고 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나에게도 "정말로" 어려운 케이스가 있다. "친구가 없어서 고민이에요."라고 하는 아이들은, 미안하지만 좀 안 만나고 싶다. 아니, 고민까지는 정말 잘 들어줄 자신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제일 무섭다. 안타깝지만 친구야. 그건 선생님도 아직 잘 모르겠단다.



지금에서야 뭐 상담도 공부했겠다, 그리고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한테 성격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지만 과거의 나는 그다지 사회성이 좋지 못한 아이였다.


유치원생일 때는 집에 오는 손님들 중에 마음에 안 드는 어른이 있으면 소리를 빽 지르거나 눈을 흘기기도 했고, 초등학생 때는 주로 혼자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일을 즐겨하며 친구들과 우르르 무리를 지어 다닌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몇 번은 당시 유행하던 왕따놀이에 본의 아니게 껴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었고, 그에 대한 분노가 엉뚱한 친구에게 튄 건지 만만한 친구 한 두 명에게는 화풀이를 한 적도 많았다. 그만큼 이기적이고 못된 구석이 있었다.


중학생 때는 우연치 않게 오래 다닌 학원에서 어울린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즐거운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러나 그땐 철학적 사고에 몰두하는 우울한 청소년이 막 되었을 때라, '도대체 친구란 무엇인가?' 하며 고민하다 실제로 친구에게 "나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것 같아"라고 중2병 진한 망발을 면전에 내뱉기도 했었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 말을 할 때 나는 진심으로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놓고 1년 후에 회장선거에 출마해서 당선이 되어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무튼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어딘가 모르게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기름처럼 겉도는 기분을 느껴왔다.


초중고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 순간들 저변에 늘 가라앉아 있던 외로움이 지금도 생경하게 다가와 가슴이 먹먹하다. 소풍을 가도,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가도 나를 매번 찾아주는 친구는 없었고 모둠활동을 하면 어느 곳에도 일찌감치 속하지 못해서 어정쩡하게 남은(나 또한) 아이들과 모여 앉았 그 상황들 속에서 묘한 비참함 같은 것도 느꼈었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고 호감을 사지 못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보였고, 이런 내가 쪽팔려서 누구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기도 어려워서 그냥 덤덤한 척 살았던 것 같다.


그 모든 상황을 야기한 건 고질적인 나의 찌질함이었다. 싫으면 싫다고 정확히 말을 못 해서 어물어물 피하고, 또 좋으면 좋다고도 말을 못 하는 바람에 진짜 좋아하는 건 다 놓쳐버려서 미련만 잔뜩 남긴 채 자기 전에 억울해하고.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태도와 오락가락하는 기분이 그대로 묻어는 이런 성격이 과장되기 쉬운 사춘기 시기를 고독하고 궁상맞은 예술가처럼 보내버렸다.




한 친구와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 함께 학원을 다녔던 아이 중(지금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아이라고 하겠음)에 유독 나에게 제멋대로 행동하던 애가 있었다. 자기 기분에 따라서 잘해주다가도 갑작스럽게 돌변해서 쌀쌀맞게 굴었다. 내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서 쓰기도 하고 친구들 무리와 함께 있을 때도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몹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애였다.


"걔는 그때 나한테 왜 그랬을까?" 걔에 대해 이렇게 말하니 오랜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걔가 너 질투했을 거야, 분명히. 넌 걔보다 더 잘하는 게 많았거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도 나에게 무례했던 그 애의 행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애가 나를 질투한다는 생각, 그럴 것이라는 가능성은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한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던 그 애는 집도 정말 잘 살았었고, 자기가 원하는 물건은 거의 모두 가지고 있었다. 성격이 비뚤어지긴 했지만 친구마저도 돈으로 산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로 정말 그 나이에 맞지 않게 돈을 헤프게 썼는데 나는 그게 부러웠다. 나보다도 가진 게 많았던 애가 나를 질투하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나고 친구가 해줬던 말을 곱씹음과 동시에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내 성격적인 결함과 성품의 빈곤함으로 인해 친구 관계를 어려워하며 자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던 애였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장면을 다시 회상해 보면 내가 친구들을 어려워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친구들을 곤란하게 했었던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애써 가십거리를 물어와서 신나게 떠드는 친구에게 "너는 왜 그런 얘기만 해?"라고 면박을 주는 내 모습, 놀러 가자 약속을 해놓고서 나가기가 귀찮아진 나머지 "사실은 할머니가 아프셔서..."라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내 모습,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먼저 장난을 친 친구에게 "아."하고 정색을 하는 내 모습.


그 어느 때보다도 친구와의 관계에 목을 매는 그 시기에 나는 친구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크게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가깝게 지내던 소수의 친구들에게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구박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만 무서워했을 뿐이고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서른이 되어 MBTI 검사를(인터넷에서 하는 거 말고! 공인된 검사가 있다.) 해본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거기서 ESTP가 나왔다. MBTI라는 걸 알게 되고 나는 내가 쭉 INFP, 평화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서 믿을 수가 없었다. ESTP라면 본인 할 말 다 하고 답답한 건 제일 싫어하면서 자기가 느끼기게 재미있는 것만 한다는 불같은 타입...! 그게 와따시?


그러나 갈수록 그 결과가 아주 틀리지만도 않았구나 싶다. 다 큰 어른이 되고 보니 사사건건 남의 눈치, 남의 생각에 매여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생각보다 남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아서 말과 행동을 하는 데 있어 전보다 훨씬 자신감 있고 솔직해졌다. 내가 추구하는 평화는 내 마음대로 살기 위한 자유를 위한 안정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막 내 맘대로 왁왁거리며 산다는 건 아니다. 대신 전에는 눈치 보여서 못 하던 욕을 이젠 대놓고 한다는 것 정도?




상담실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고 하고 싶다. 네 모습 그대로 살다가 보면 그런 너를 좋다고 친구가 되자고 하는 애들이 분명히 있단다. 아, 물론 네가 하는 행동이 영 괴상하고 못마땅하면 절대 친구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누가 와서 "그런 건 좀 고쳐라."라고 하면 그런 얘기는 귀담아듣고 고치도록 해라.


나를 고깝게 보던 그 애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기가 나를 질투해서 틱틱거리는데도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다른 애들과 함께 그 애랑 잘만 어울려 다녔었다. 걔가 사주는 밥도 꼬박꼬박 잘 얻어먹고, 걔네 집에 가서 잠도 잘 잤다. 아, 진짜 눈치가 없어 보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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