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owhat Sep 16. 2018

여행의 시작은 왜 묘하게 우울할까?

[여행에세이] 1화 

14시간여 만에 유럽에 도착해 남의 침대에 당연스럽게 누웠지만, 사실 거기까지의 여정은 당연스럽긴 커녕 꽤 어려웠다. 근 2년 만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목적지가 친숙하지 않은 지역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간만에 주어진 기회라는 걸 알기에 덜컥 떠나긴 했지만, 익숙지 않은 것들과 아직 마주하지 않은 위험 따위를 염려하느라 비행기 안 11시간은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떠나기 전에도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걱정했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을 끊임없이 신경 썼다. 종국에는 괜히 성가시게 여행을 떠날 생각을 했다고 스스로 원망하기까지 했다. 한때는 여행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로 엉망이었다, 당시의 나는.


방향을 상실한 상태였고 무엇인가를 향하고 싶다는 욕구마저 잃은 채 지내고 있었다. 무엇을 선택해도 결과는 실망 내지 후회였다. 확실한 동기나 근거 없는 선택이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서로 모순되며 부딪혔고, 그 가운데서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아무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해내던 것들을 오히려 더이상 쉽게 해낼 수 없었다. 비행기 환승도, 짐을 챙기고 간수하는 단순한 일도 모두 버겁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여행도 더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걸까. 비우고 홀연히 떠나기보다는 채우고 낑낑대며 떠나느라 신경만 긁었다. 많은 것들이 새롭게 어려웠다.


그렇게 떠났었다. 도착하자마자 주인도 없는 집 문을 우왕좌왕 따고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그 집에서 우선 3주를 머물렀다. 마음이 아이가 된 듯 버거웠지만, 하루이틀 지나면 언제나처럼 무거움도 엷어질 것이라고 다독였다. 무엇이든 써보겠노라며 찾아간 그 집의 창가에서, 밤하늘에 걸린 초승달과 그 밑에 낮게 펼쳐진 지붕들을 눈에 새겼다. 조금씩 어디선가 봤던 것처럼 익숙하고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