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대단한 마법이나 힐링은 아니다.
[여행에세이] 2화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N에게, ‘7년 전 유럽에 왔을 때 이곳에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벌써 7년이 흘렀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7년 전 여름, 나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채로 잔돈을 던지며 누구나 다 비는 소원을 빌었다. 그때 나를 그토록 자극했던 유럽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꽤나 강렬히 ‘다시 가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지만, 그 감정도 결국 점차 일상에 희석됐다.
가고 싶고 하고 싶으면 ‘간다’, ‘한다’라고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던 N. 그녀는 중년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생동감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내게 대뜸 "말하는 습관을 바꾸라"는 조언을 했다. 자기도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그림을 시작했다면서, 나 또한 하고 싶은 것을 계속 찾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용감한 여자’라고 스스로 계속 되뇌어 말하라고 말했다. 짧은 비행 시간, 옆에 앉은 낯선 동양인에게 진정성 있는 말을 해주는 그녀가 고마워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그때도 속으로는, 그녀가 시킨 대로 실천할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렌체에서 3주 가량을 머문 에어비앤비 L의 집에 걸려 있던 비틀즈 포스터. 내 속에서 사라진지 너무 오래된 용기나 열정 따위를 다시 더듬어나 볼 수 있을까 하여 혼자, 멀리 떠난 여행이었다. 누가 시킨다고 단박에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잃었던 꿈이 다시 샘솟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유명한 두오모에 올라 숨 막히는 전경을 마주하는 일들도 나를 즉각 ‘힐링’시켜 주지는 않을 수 있을 것도 알았다. 여행은 사실 거의 대부분 환상에 기반한다. 떠나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또 다녀와서 여행을 기억할 때도 상당 부분은 여행 자체가 머금고 있는 환상 덕분에 실제보다 더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여행은 마법 같을지언정 완벽한 마법은 아니다. 여행 동안 감정의 색이 매 순간 황홀하게 현현하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