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3화
한국 시차에 맞게 잠이 깨니 신새벽이었다. 어두운 기운에 다시 잠을 청했다가, 얼마 뒤 눈을 뜨자 그제야 해가 나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아침. 전날 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침대 위에 창이 나 있는 줄도 미처 몰랐다. 안경을 끼고 밖을 바라보니 주황빛 지붕을 얹은 소박한 외관의 집들이 한가득이었다. 저 멀리에는 산자락이 둘러쳐져 있었다.
밤새 밀린 카톡에 답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한낮이었다. 대화를 하는 중 방 안은 점점 더 밝아졌다. 해가 잘 들고 천장이 높은 방이었다. 친구는 내가 보내준 창 밖 사진이 좋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이 집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인 장면을 본다는 것’이 부럽다는 거였다. 그때야 실감했다. 지금 내 창 밖엔 평소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구나. 여행은 기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아직 덜 뜬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다른 그림이 펼쳐져 있는 걸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 비싼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멀리 날아간다고.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나 건성의 마음으로 이 장면을 마주했던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이삿짐처럼 꽁꽁 싸여 있는 숙제들이 있었다. 퍼뜩, 한동안 그랬듯 여행 중에도 꽤 많은 순간을 의식도 못한 새 감흥 없이 흘려보낼지도 모르겠단 위기감이 들었다.
일단 그러면 들인 돈이 아까워진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날씨도 궁금하던 차에, 얇은 잠옷 위로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물씬 느껴졌다. 낯선 지역에 여행을 갈 때는 아무리 인터넷으로 기온을 확인해도 그곳의 실제 날씨를 가늠할 수가 없다. 공기가 머금고 있는 수분, 하늘의 맑음과 바람의 상냥함의 정도 같은 것들 말이다. 창 밖 옅은 푸른색 하늘 아래엔 고층 빌딩처럼 시야에 걸릴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정적인 풍경을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한두 명씩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처럼 창을 열더니 빨래를 걷는 여자, 개를 산책시키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주머니. 누군가의 집 옥상에는 지난밤 친구들을 초대했는지 식탁과 의자 따위의 흔적이 널려있었다. 비둘기들이 빨간 지붕 위에서 이 모든 걸 함께 구경했다. 당연하지만 낯선 곳에도 사람이 있었고 어제와 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꼭 새로운 것을 보고 크게 감탄해야만 감흥인 것은 아닐 테다.
4년 전 여행 중 썼던 글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던 때 떠난 여행이었고, '무리하지 않는 여행'이 모토였습니다. 여행이라는 이유로 평소 즐기지 않는 것들을 해보고, 질러 보고, 나답지 않은 행동도 해보는 그런 '용감한' 여행은 다소 지양했습니다. 당시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보다 원래의 나를 다시금 찾는 게, 보통의 내가 원하는 것에 유심히 귀기울이는 게, 좀 더 필요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어쩌면 다소 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매회마다 나누고자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