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4화
피렌체에서의 본격적인 첫 날. 생각보다 더 좋은 날씨에 간단히 입고 집을 나섰다. 햇살이 내리쬐는 길목을 따라 걷다 보니 금세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이 나왔다. 한적하던 동네와 달리 역 근처는 확실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중앙역이라면 으레 소매치기 따위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 가방 앞 지퍼를 주먹 안에 꽉 쥐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수상쩍은 사람들보다는 평범한 여행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거대한 배낭, 캐리어, 그 옆에 또 보조가방...온몸에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역 안에 털썩 주저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가족들, 친구들, 세계 각국에서 왔을 법한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 행선지가 로마일지 밀라노일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어딘가로 흘러가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순간 한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긴장감은 허무하게 풀렸다.
두오모 광장도 관광객들로 넘쳐 났다. 날은 쾌청했다.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마침 돔 앞에서 서른 명은 더 돼 보이는 외국인들이 합창을 시작했다. 무리 중 한 명이 청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수신호로 지휘하는 캐주얼한 퍼포먼스 였지만 어우러지는 음색들이 무척 고왔다.
노래 한 곡이 끝나자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이 노래는 우크라이나에서 핍박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고 설명한 뒤 지그시 눈을 감고 묵념했다. 그러고 보니 맨 끝에 선 여자 두 명은 파란색과 노란색의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서 있었다. 고요하고 엄숙한 노래가 다시 광장을 메웠다. 5분에 한 번 꼴로 요란하게 울려대는 이탈리아의 구급차 사이렌 소리도 노래를 끊지 못했다. 한 여자는 노래하면서 연신 얼굴을 훔쳤다.
그 전날 마침 페이스북에서 홍콩의 친구가 올린 글을 봤던 참이었다. 당시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던 정부의 시위대 탄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홍콩에 무슨 일이 있나, 트위터를 뒤져보니 시민들의 시위와 경찰의 강경 진압이 며칠 째 계속되는 중이었다. 중국이 홍콩의 민주적인 투표권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여름(*2014년) 직후부터였다. 물대포와 최루액, 언론의 주목을 받는 최연소 시위 주동자... 동일한 일들은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서든 반복된다. 사진 속 광경, 울부짖음, 원성은 낯익었다. 그리고 피렌체에서도, 한 낯선 나라의 젊은이들이 자국의 현실에 대해 엄숙히 노래하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에 휴가를 보내러 온 가지각색의 이질적인 사람들, 하지만 어쩌면 우리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독' 눌러주시면 앞으로도 계속 재미있는 여행 단상 보내 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