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5화
이탈리아 특유의 아페리티보(aperitivo)는 원래 저녁에 식전 칵테일을 한 잔씩 마시며 뷔페식 핑거푸드를 가볍게 즐기는 문화를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피렌체 곳곳에서는 점심이든 저녁이든 아페리티보식으로 식사를 준비해놓는 카페가 곧잘 눈에 띈다. 이렇게 끼니를 해결하는 현지인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나도 하루는 1인용 테이블만 너댓 개 놓고 점심 아페리티보를 하는 작은 동네 식당에 갔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직장인 대상 점심 한식 뷔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접시에 수북이 담아주는 미리 해 둔 파스타와 모짜렐라 샐러드를 먹으며, 손님들과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주인 아저씨를 구경했다. 아침에 들렀던 타바키(tabacchi. 커피와 간단한 스낵, 담배와 버스표 등 각종 물건을 파는 작은 슈퍼마켓)에서도 발견한 사실인데, 이탈리아의 카페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곧잘 말을 붙인 뒤 마치 오래 알던 사이인 양 신나게 수다를 떠는 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알아듣지 못하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와 떠들 수 있는 공통의 주제라고 해봐야 오늘의 날씨 정도 밖에 더 있을까 싶어 의아할 뿐이었다. 빈약한 상상력과 그보다 더 빈곤한 마음의 문제일까.
점심 한 끼 먹는 동안 손님들은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는 마치 한국 직장인들이 식사 후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선 채로 후루룩 마신 뒤 빈 컵을 쓰레기통에 휙 버리고 가는 것처럼, 1유로짜리 에스프레소를 빠르게 마셨다. 커피 잔을 쭉 들이킨 뒤 낯선 이와 한바탕 걸쭉하게 웃고 떠들고는, 동전을 내고 홀연히 떠나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 아저씨는 접시를 치우고 다시 또 커피를 뽑으며 무슨 장단인가에 맞춰 춤추듯이 어깨를 들썩댔다.
이런 곳에서 어떤 여행 가이드북들이 시키는 대로 스마트폰과 귀중품을 손에 꼭 쥔 채, 당장 누가 채가기라도 할 것처럼 어깨에 바짝 힘 주고 있기란 여간 바보 같은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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