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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Oct 22. 2018

비 내리는 중세 도시에서 요가하기

[여행에세이] 6화

내가 찾아간 피렌체의 요가원은 아르노 강 이남에 있었다. 중세 시대 건물의 홀을 그대로 연습실로 개조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천장은 무척 높았고, 벽에는 프레스코화가 남아있었는데 인테리어처럼 그림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회반죽을 발라 덮어버렸다. 흰 벽에 그림을 거는 게 아니라 그림 위에 흰 벽을 칠해버린 셈이다. 오래돼 삐걱대는 나뭇바닥에 누워 높은 천장을 바라보고 잘 하지 못하는 요가를 더듬더듬 따라하는 기분은, 무척 좋았다. 첫날 시범 수업료로 10유로를 냈다.


장기 여행을 하려고 보니 한국에서 하던 운동을 조금이나마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으로 떠나기 전부터 요가 교실들을 검색한 결과였다. 피렌체에 도착해 처음 몇 군데는 직접 가서 벨도 눌러보고 이메일도 보냈지만 허탕을 쳤다. 여행지에서 무슨 유난스럽게 운동이고 또 얼마나 대단히 한다고 요가인가, 할 수 있겠지만, 그때 나에게는 필요했던 선택이었다. 나를 위한 작은 일상들을 놓치지 않고 하나씩 붙잡는 일이.


그렇게 처음 피렌체에서 요가 교실을 만났던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요가원을 나와 바로 앞의 베키오 다리로 가니 피렌체의 돌길이 빗물에 젖어 반짝반짝 빛났다.



베키오 다리는 아주 작은 다리다. 다리 위는 생활인들의 터전이다. 오래도록 대물림돼온 듯 보이는 귀금속 가게의 간판들은 죄다 빛이 바랬다. 점포들 위의 2층으로는 누군가가 세 들어 있을 법한 작은 방들이 작은 창을 낸 채 줄지어 들어서있다.


숱한 관광객들의 발길에 진작 변질됐을 법도 한데, 다리 위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성의있게 옷을 갖춰입은 상점 주인들이 여전히 손님을 맞이한다.


둑길을 따라 걸으며 노천카페와 우피치 미술관을 근처를 구경했다. 차에 치일 것 같이 아슬아슬한 이탈리아 특유의 도로에서도 누구 하나 당황하는 법 없는 보행 문화를 경험하고, 멍하니 걷다보면 금세 다음 다리가 나오는 아르노 강을 하릴없이 여러번 이쪽 저쪽 건너 다녔다. 저녁때가 다 되어 그저 그런 카페에서 그저 그런 음식을 먹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여행지에서 혼자 다니다 보면 매일 저녁 식사가 좀 난처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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