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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Dec 27. 2021

나의 강아지를 보내는 일기 13

2020.6.9


31도의 무더운 여름 시작이다. 코코는 아직 내 곁에 있지만, 많이 안 좋다. 뒷다리가, 사지가 마비되고 있다. 그래도 아직 쌕쌕대는 강아지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인다. 나는 잔인한 사람일까.


새삼 코코가 내게 준 것들을 생각했다. 엄청났다. 생애 처음 내 선택 여부를 막론하고, 누군가를 조금의 아낌도 없이 사랑하는 사랑을 알게 됐다. 코코를 돌봄에 있어서는 지치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었다. 혼자만의 삶을 걱정할 때는 이것도 고민, 저것도 고민, 모든 것에 주저했고 모든 것을 염려했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실패가 두려웠다. 그런데 코코가 아픈 뒤로 코코를 돌보는 일에서 만큼은 놀라우리만치 적극적이었다. 앞뒤를 재지 않고 노력했다. 실패할 것을 두려워 할 시간에 최선을 다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임을 알면서도 그저 묵묵히 걸었다. 여름 언저리의 퇴근 길, 길고 긴 통근길을 단 5분이라도 빨리 가 닿겠다고 뛰듯이 걷던 나를 보면서 이 사실을 불현듯 발견했다. 소름이 돋았다. 내 속의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지. 이런 파워가 어디 숨어있었던 거지. 평소 나라면 이 힘씀의 의미며 이유며 명분이며 합당함을 셈하며  세상 모든 의심을 끌어다 붙여 고뇌했을 텐데. 코코에 관해서는 스스로를 그렇게 괴롭히지 않는다. 그저 순수하고 명료하고 저돌적으로, 한 생명체의 호흡만 돌본다. 목표의식은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고 심플하다. 이 아이의 마지막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연장하고 지키는 것. 너도 나도 서로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고, 우리 둘 다 그 시간을 위해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무튼, 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소원이던 코코의 만 15살 생일도 보냈고, 계절이 바뀐 만큼 올해가 가고 있고, 그 시간 동안 여태 알던 나와 다른 나를 만나고 있었다. 코코는 내게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떠나려는 걸까. 목표 있는 삶, 에너지가 있는 삶,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삶. 평생을 내가 제자리에 서서 발 구르며 고민만 하던 문제들에서, 코코는 시원하게 한 발짝 떼게 해주었다. 나도 나의 전부를 쏟아붓는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살 때 나는 이런 모습이라고. 꽤나 긍정적이고, 체력은 부족함 없이 샘솟으며, 묵묵하고 강인한 사람이 된다고.


찾고 싶었지만 내 힘으로는 만나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해주다니. 이 강아지의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경이롭기까지 했던 어떤 여름 날. 내가 태어나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나에게 그보다 더 많은 걸 줬다. 잃은지 오래였던, 나 자신을 다시 긍정하는 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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