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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Jul 05. 2022

나의 강아지를 보내는 일기 17

2020.8.7


코코가 떠난지 이재 4일째. 여전히 실감이 잘 안 난다. 

아주 빠르게 적응해버린 건지, 아니면 다가올 후폭풍을 감지하지 못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나는 웃고 떠들기도 하고, 먹고 싶은 메뉴도 고르고 있다. 머리를 하러 가야 하는데 예약을 할까, 캠핑 테이블이 필요했는데 저렴하게 나왔으니 살까, 고민도 한다. 그러면서 코코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언니가 4일째인데 벌써 이렇게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네 얘기, 네 생각을 해서. 아무렴 주인이 울지 않아야 개들이 미련 없이 행복하게 이승을 떠난다지만, 그건 워낙에 견주들이 그렇게 못하다보니까, 그게 잘 안되다보니까 나온 말 아닐까. 그런데 난 그들에 비하면 너무 빨리 멀쩡해져버린 게 아닌지. 코코가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날 게 아니라, 서운하고 괘씸해서 뒤돌아보진 않을지. 내 감정을 나조차 잘 모르겠다. 아침이나 밤이나 코코 유골함을 쓰다듬어도 애끊는 슬픔 보다는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을 느낀다. 깊은 바다처럼. 코코의 사진과 동영상을 계속 본다. 그립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나올 만큼 슬프진 않다. 그저 사진 속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 이 아이가 이제 곁에는 없다.. 라는 감각을 떠올리면 순간 아득하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또 크게 실감나지 않는다. 이불 속으로 파고 들던, 안아달라고 짖던, 그런 모습들을 부러 떠올려본다. 열심히. 그래도 그런 네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잘 와닿지 않는 감각이다. 실제로 늘 집에서 아주 조용히 있던 너였다 보니까, 밖에 있다 집에 돌아와도 어색함의 격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슬픔 속에 푹 잠기지 못하는 내가 싫다. 슬픔이 부족한 건 혹시 코코에 대한 나의 사랑이 부족했던 걸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 내 스스로 자신할 수 없는 내 마음이라니. 뭐 이 따위일까. 미안함과 자책감을 해소하고 싶어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게 사후교감까지 신청했다. 죽기 이틀 전 내 눈을 보며 코코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난 코코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힘들 때 만지고 안아올리고 입을 벌려 약을 먹이는 것 하나하나가 못 견디게 아프지 않았을까. 마지막까지 맛있는 것도 안주고 엄격하게 식단을 관리한, 이런 나를 네가 과연 이해할 수 있었을까. 늘 네가 제일 사랑하는 언니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보니 전혀 자신이 없다. 


그저께는 코코가 아팠던 기간의 모든 병상일지를 복기하며 내 실수를 곱씹었다. 어제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나를 혐오했고. 오늘은 그저 불안했다, 코코가 없다는 것이. 


코코가 떠날 것 같다는 통화 중에도 나는 침착했고, 떠났다는 말엔 울면서도 한편으론 이미 상황이 벌어졌음을 수용하고 있었다. 모든 걸 곧장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해 눈빛이 멈춰버린 널 안고, 왜 갔냐고 왜 나 없을 때 갔냐고 울부짖으면서도 사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도 반나절이 지나니 멈췄다. 계속 운다고 바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계속 울지 말아야 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마지막까지도 차갑고 기이한 촉감으로 변해버린 코코의 죽은 몸을 쓰다듬고 만졌다.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때까지. 그냥 누워있는 코코가, 죽었는데도 예뻤다. 피부가 차가웠지만 예전과 다름없는 코코로 느껴졌다. 그냥 좀 차가울 뿐이지. 그냥 죽은 것 뿐이지. 더이상 살아있지 않을 뿐이지. 내 앞엔 코코가 있었다. 코코를 뼛가루로 만들어 오고서도, 눈물은 더이상 나지 않았다. 다만 죽은 몸으로나마 코코의 형체를 더이상 보고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은...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된 거다. 


검은 털의 한 생물이 나고 자라 나를 만났다가, 이제 내 옆에 없고, 퇴근하고 집에 가도 없다. 검은 털뭉치, 살덩어리의 생물은 더이상 실물로 만날 수 없다. 그래도 왠지 코코가 아직 멀지 않은 이 느낌은 뭘까. 코코 영혼이 아직 내 옆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마음껏 슬퍼하지도 마음껏 그리워하지도 못하고, 자책과, 혐오와, 후회라는 뒤틀린 방식으로 코코의 죽음을 소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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