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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Jun 21. 2022

나의 강아지를 보내는 일기 16

2020.8.6


코코가 떠났다. 이 여섯 글자를 그래도 꾸역꾸역 써두려고, 3일 만에 일기장을 펴들었다. 나의 일상은 놀랄 만치 타격이 크지 않았다. 출근도 하고, 남들과 웃으면서 일도 했다. 집에 돌아가면 안아올릴 강아지만 없을 뿐이었다. 


코코가 떠나고 난 뒤의 이틀을 미친듯이 복기했다. 슬픔을 대하는 내 방식이 징그럽다고 느꼈지만, 도리가 없었다. 감정 속에 마음껏 빠져있을 수가 없었다. 끝도 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것, 지금 내가 해야 할 것, 합당한 것과 합당하지 않은 것, 그럴만한 것과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것...사흘 째 되는 날에야, 거지 같은 합당함에 대해선 그만 생각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슬픔 속에 푹 잠겨 허우적대지 않았던 건, 그만큼 마음의 준비를 해뒀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사고를 멈추면 예상치 못한 게 밀려올까 봐 두려웠던 걸까. 코코는 이것까지 다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나 자신이 소름끼쳤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코코가 가고 나니 후회와 미련, 인정과 수용, 부정 등등 한 바구니에는 담길 수 없을 감정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지난 날들을 후회하면서도 이상하게 어딘가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너무 보고 싶으면서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 빠르게. 이 감정 상태는 무엇일까 싶었다. 마지막 코코 모습이 아이 명줄을 멱살 잡고 끌고 가던 내 눈에도 더는 봐줄 수 없게 안쓰러웠기 때문일까. 코코를 더 살려두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여기까지 하고 갔으면 하는 일말의 마음이 있었다. 하얀 도화지에 검은 먹물을 떨어뜨린 것 마냥 불온한 생각이 있었다. 불완전한 애정이었던 걸까, 자책하게 됐다. 늘 이날이 오면, 슬픔에 젖어 어쩔 줄 모르는 다른 견주들처럼 나도 그럴 거라고 상상했었는데. 상상 외로 차분하게 지난 날을 복기하며 코코의 죽음을 소화시키는 나의 모습은 이 불완전함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씁쓸하게 혐오스러웠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벌써 그다음 일상을 차곡차곡 준비하기도 했다.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쩜 이 현실을 이렇게나 빠르게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는지 끔찍스러웠다. 이런 모습을 코코에게 들키기 싫었다. 너무 미안할테니까. 


3일이 지나니 눈물은 말랐다. 누가 봐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3일 만에 말이다. 다만 더이상 엄마와 코코가 있을 때처럼 교감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찌됐든 나는 코코가 없는 삶에 빠르게 적응해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냥 별일 없이 내 삶을 살아낼 것이란 건 알 수 있었다. 코코를 잊고 싶지 않은데, 코코에게 잘못하고 싶지 않은데, 가장 사랑하는데 왜 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지도 계속 반문했다. 하루아침에 내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죽도록 힘들지 않을 수가 있는 걸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걸까. 혼란스럽고 또 혼란스러웠다. 


나답지 않은 모습도 하나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굳이...하며 의미 부여 안 했을 법한 미신 같은 것들로부터 굉장히 큰 위안을 받았다. 유골함에서 코코를 느끼고, 살아있는 강아지마냥 유골함을 안고, 코코 냄새가 아직 그대로 배어있는 손수건을 머리 맡에 두고 계속 냄새 맡고, 코코가 베던 베개를 걔가 종종 내 다리 옆에 몸 붙이고 누워 있던 것처럼 찰싹 붙여놓고, 코코가 컵에 담은 새 물을 마시는 걸 좋아하니 머리 맡에는 물컵을 떠다 두었다. 예전 같으면 비웃고 지나갔을 미신 같은 행동들을 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을 내가 하고 있네, 참, 하며. 우스운듯 하나씩 써내려갔다. 그러면 잠시 말랐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쏟아지고. 누군가 타인에게 코코 얘기를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것도 참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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