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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글

자식의 숙명, 업보

by sooowhat

어릴 땐 엄마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조금 더 자라선 엄마의 부족한 면을 눈치챘고 엄마를 경멸했다. 그땐 마치 내가 비밀이라도 알아낸 것 같았다. 의기양양했다.


그 시기를 떠나보낸 지금에서야 엄마를 존경한다. 나는 몰랐다. 아빠가 내내 규칙적인 생활비를 주지 않았는데도 엄마가 규칙적인 살림을 해낸 것을. 내 대학 학비 걱정에 전전긍긍했던 사람이 엄마였다는 것을. 사실 고학생이었어야 할 나는 그것도 모르고 평범한 대학생이 누림직한 고민만 누리며 젊음을 낭비할 수 있었다. 엄마가 모든 걸 숨긴 덕에 한번도 진지한 생존의 고민을 겪은 적 없었다. 우스웠던 나의 고뇌들은 상대적 결핍에 머물러있었을 뿐이었다. 이제야 안다.


내 엄마도 역시 엄마였음을 나이 먹고서야 인정하게 되는 건 모든 자식의 숙명이라도 되는 걸까. 엄마는 엄마라는 운명을 지고 한 인생을 헤쳐왔다. 그 시간은 결코 쉽지도 짧지도 않았다. 그 몫을 기어코 짊어져낸 엄마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엄마도 세 남매 중 제일 작은 막내딸이었다.


그 작은 여자아이가 어찌됐든 생 앞에 주저앉지 않으려 애를 쓰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손을 붙잡고, 고생했다고..엄마는 엄마로서 충분히 노력했고 충실히 해냈다고. 엄마는 완벽한 엄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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