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책이나 휴대폰을 볼 때마다
눈에 힘을 줘야 글씨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선을 급히 옮기면 초점이 흐려지거나,
순간적으로 뿌옇게 보이는 일도 잦아졌다.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안과에 방문했다.
이런저런 검진을 마친 뒤,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는데 양안 시력 1.2와 1.5.
혈관도 튼튼하고,
막힌 곳 없이 아주 깨끗하다고 하셨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기에
내가 겪는 불편함의 이유를 묻자
선생님은 짧게 말씀하셨다.
“노안이에요.”
그 순간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생각.
‘아직 마흔넷인데, 내가 노안이라고?’
내 표정을 읽으신 듯, 선생님은 덧붙이셨다.
“노안은 40대 초반부터 시작됩니다.”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설명이었다.
“그렇군요.”
대답은 했지만, 쉽게 수긍이 되지는 않았다.
요즘 백세 시대라고들 하지 않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 겨우 인생의 3분의 1을 살았을 뿐인데,
내 몸은 벌써 노화를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그 사실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연의 섭리인 것을.
의사 선생님은 돋보기를 권했고,
진료를 마친 뒤 근처 안경원에서 돋보기를 맞췄다.
선글라스조차 불편해서 잘 쓰지 않던 나에게
안경의 착용감이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기를 쓰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전보다 눈이 훨씬 편안하다.
마흔넷이 나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 노안이라니.
내가 돋보기를 쓰다니!
이런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든다.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내 몸의 한계는 여전하고, 노화로 향해가는 변화에 나 역시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실감하게 된 것이다.
며칠 전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40대, 50대의 자산 보유율이 증가하고,
경제력이 높아졌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이룬 것 하나 없이,
이렇게 낡아지고 있다.
눈의 노화를 계기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흐릿해진 시야 덕분에
오히려 나를 더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나의 몸은 앞으로도 점점 더 노화가 가속될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과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기능이 떨어지는 신체에 맞춰,
삶의 방식도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쓸데없이 눈을 혹사하게 만드는,
알고리즘으로 떠오르는 숏폼 영상들을
무의식 중에 보는 행위를 줄여야겠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눈이 피로할 땐 멀리 보이는 대관령을 자주 바라보자.
어쩌면 노안은,
삶에 치여 근시안이 되어버린 나에게
인생이 보내는 작은 경고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눈을 들어 산을 보고, 하늘을 보라고.
삶이 흐려질 때일수록, 더 멀리 보라고.
2026년, 마흔넷의 나에게 온 첫 번째 선물.
노안.
그럼에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