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더 깊은 유산,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나이를 한 해, 한 해 먹어갈수록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세상을 단단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삶의 방향성에 있어 북극성이 되는지를.
이런 생각은 육아의 시간들이 쌓일수록
더욱 자주 떠오르고, 점점 더 깊어졌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나는 요즘,
그 사랑만으로 과연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보호자이기 이전에,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다.
그리고 아이는 이 사회 속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한 층 한 층 구축해나가야 하는
독립적인 존재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줘야 할까.
좋은 환경? 풍족한 지원? 남들처럼 해주는 것들?
물론, 그런 것들이 있다면 더 좋겠다고
나 역시 가끔은 생각한다.
내 형편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아이들에게 다른 부모들처럼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환경이라는 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고,
결국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그 끝에 남는 답은 하나다.
부모인 내가, 내 삶을 얼마나 단단하게,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교육이고,
아이를 성인으로 길러낼 부모의 의무가 아닐까.
그래서 요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보다,
‘무엇을 기준 삼고 살아야 할까’를
더 자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철학’이다.
삶에는 자기만의 철학이 필요하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확고한 신념.
주관적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가진 생각.
그게 있어야 환경이 바뀌어도 삶이 무너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버텨내고, 견딜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내 삶은 여전히 위태롭고 흔들린다.
국제 정세나 우리나라의 경기 상황을 보면,
외적으로는 더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어제의 삶보다 오늘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가족, 아이들, 일.
이 모든 것이 우연도, 당연한 것도 아니라는 걸
나이를 먹으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
지금까지도 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무사하다는 것.
비록 비싸고 유명한 아파트도,
의리의리한 대저택도 아니지만
비를 피하고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금전적으로 여유롭진 않지만,
커피 한 잔을 사 마실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여전히 내 삶에 남아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나는 내 삶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삶의 풍요로움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감사하며 사는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감사는 삶의 품격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요즘 경기가 정말 좋지 않다.
빈부격차는 더 크게 느껴지고,
상대적인 박탈감은 쉽게 마음을 잠식한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진짜 격차는 ‘물질’이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정서’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누리는 것을 얼마나 감사히 여기는지.
그 태도가 결국 그 사람만의 삶의 결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나 무한한 사랑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행복을 발견하고
삶을 존중하며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
‘내 삶에 주어진 것 중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 철학.
그것 하나만큼은 꼭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가려 한다.
삶의 불안한 순간들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의 일상이,
언젠가 아이들이 마주할 시련 앞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북극성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