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물드는 중입니다
요즘 나는 되도록이면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어
늘 가던 길은 피하고,
조금 돌아서라도 새로운 길을 걷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강릉 시내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은 이곳을 여행지라 부르지만,
나에겐 익숙한 일상의 무대.
마음만 먹으면, 매일이 여행이 되는 이 삶에
당장의 생계는 잠시 잊은 채
감사함과 충만함을 느꼈다.
걷다 보니,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들이
온 길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이미 완연히 노랗게 물들었고,
어떤 나무는 아직 초록빛을 꾹 움켜쥐고 있었다.
같은 거리, 같은 계절.
그런데 나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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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도 저렇게 편차를 두고 오는데,
사람의 삶이 저마다의 속도로 흐르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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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같은 업종으로 창업한 사람들 중에도
누군가는 멀찌감치 앞서 가고,
누군가는 겨우 숨만 고르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사이에서 나는,
늘 느리고,
왠지 모르게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서로 다른 색의 은행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말랑하고 느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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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도, 저 나무도
그저 각자의 계절을
자기 속도로 통과하고 있을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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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미 깊은 가을을 살고,
누군가는 겨울 채비를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아직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저
아직 완전히 물들지 못한 나무 한 그루일 뿐이다.
조금 느리게,
조금 뒤늦게,
조금 엉성한 모습으로
내 계절을 통과해 가는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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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나도
물들어야 할 때에
물들어야 할 색으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물들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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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길, 지금은
‘불확실성이 최고조인 시대’라고 한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불완전한 내 삶에 불안함이 엄습하곤 했는데,
오늘 은행나무를 보며
머리도 마음도 조금 맑아졌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속도로
계절과 계절 사이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