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대신 판단이 앞서는 사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만큼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가며
자신이 이전보다 더 똑똑해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오히려 예전보다 냉철하고, 때로는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아이의 작은 말소리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회.
무례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지식보다 먼저 필요한 건, 사람을 향한 따뜻한 이해이다.
이해 없는 지식은 너무 쉽게, 무례가 되고 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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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레드에서 읽었던 글이 있다.
KTX 열차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조용히 앉아 있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엄마, 이거 뭐야?”, “이거 주세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직원이 와서 민원이 들어왔다며 부모에게 제지하라는 안내를 했다고 한다.
아이가 떠들어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니고,
부모가 충분히 절제시키고 있던 상황이었다.
오히려 중년의 어른들은 큰소리로 대화하고 전화 통화도 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문제로 지적되었다는 사실이 속상하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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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를 보면 세대 간 혐오가 팽배한 것 같다.
20대는 40·50대를 ‘영포티’, ‘영피프티’라 조롱하고,
기성세대는 MZ세대를 나약하고 불평 많은 세대라며 비하한다.
젊은 층은 노인을 혐오하고, 노인은 다시 젊은 세대를 무시한다.
이제는 아이들까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그 시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조차
‘버릇없음’으로 단정되며 비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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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부모들이 육아를 하며 힘든 건
‘아이’ 때문이라기보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차갑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너그러움은 사라지고,
“교육을 제대로 안 시켰다”는 평가의 눈초리만 남아 있다.
그 시선 속에서 부모도 자유롭지 못하고,
그럴수록 더 강박적으로 아이를 통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이 아이에게 너무 매몰되어,
육아 자체가 즐거움보다 고통처럼 느껴지고
이것이 저출산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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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서 ‘사랑’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니,
조금의 소음도, 작은 실수도 참아낼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사랑 없는 지식은 결국 무례함과 폭력이 되기 쉽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만,
말은 더 날카롭고 독단적이며 공격적이다.
이분법적인 판단만 난무할 뿐,
따뜻한 이해가 자리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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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도 가장 큰 가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우리가 진짜 잃어서는 안 되는 삶의 본질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존경, 우정, 친절, 배려…
이 모든 것이 사랑에서 파생된 감정들이다.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려면,
서로를 향한 마음 — 사랑이 다시 풍성해져야 한다.
그 작은 마음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결국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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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내가 만나는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같은 따뜻한 말을 건네려 노력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먼저 건넨다.
너와 나의 하루가 그렇게 따뜻하길 바라면서.
오늘 내가 건넨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을 덮어주길 바란다.
당장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을지라도,
오늘 내가 건넨 따뜻한 말과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겐 분명 전해지리라 믿는다.
내가 베푼 작은 배려가
언젠가
내 자녀, 내 부모에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따뜻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모두의 삶이,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마음만은 포근한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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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은 결국 이해와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