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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범 Jan 03. 2022

주말의 가족 식탁

토요일 오전부터 우리 부모님은 매우 분주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는 집 안과 베란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백개가 조금 넘는 식물들을 돌본다. 모든 식물들을 정성스레 어루만진 뒤에 노란색 장바구니를 들고 아빠와 장을 보러 나간다. 아빠는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셰프가 된다. 엄마의 바통을 이어받아 아빠가 요리를 시작한 지는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엄마보다 아빠가 주방에서 앞치마를 둘러메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아빠는 티비로 요리와 관련된 프로들을 보고, 핸드폰으로는 다양한 레시피들을 수집한 뒤 직접 실습에 나선다. 성공 확률은 90퍼센트. 우리 집 한정 셰프이지만 성공률은 서울의 잘 나가는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견줄만하다. 월요일이 시작되면 아빠의 머릿속은 이번 주말에 우리에게 어떤 음식들을 먹일지로 가득하다. 


10시 즈음이 되면 주말이 되기 전에 엄마와 누나와 나에게 미리 예약받은 요리들로 가득 채워진 식탁 앞에 모여 앉는다. 주방과 제일 가까운 자리는 항상 셰프님 몫이다.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완성되어 가고 있는 음식들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셰프님의 옆자리는 엄마가 차지한다. 나는 엄마와 마주 보고 누나는 그 옆에 앉는다. 언제부터 지정석이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의 우리 집 식탁은 항상 같았다. 우리는 지난 며칠 동안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하며, 아빠가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었던 음식들과 철저한 예약 시스템으로 주문받은 음식들로 이루어진 훌륭한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갓 사 온 신선한 재료들과 직접 엄선한 제철 재료들이 아빠의 손재주를 타고 한 끼의 식사가 된다. 우리는 모두 ‘맛있다’를 연발하며 맛을 음미한다.

우리의 대화는 밥을 먹는 도중에도 끊이질 않는다. 밥을 먹다 오른쪽을 바라보면 거실의 커다란 창으로 토요일 낮의 기분 좋은 햇빛이 거실까지 넘치게 들어온다. 집 안에는 식물과 꽃들이 가득하고 창 밖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잔뜩 눈에 들어온다.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식물원 안의 작은 카페에 와 있는 듯하다. 

10시에 시작됐다고 생각한 우리의 점심시간은 점심을 다 먹으면 그제야 진짜 시작된다. 이미 맛있는 것들로 채워진 위장이 또 맛있는 것을 달라며 요동친다. 깨끗하게 해치운 접시들은 모두 설거지 통에 집어넣는다. 식탁이 한 번 정리되면 아빠는 다시 앞치마를 둘러멘다. 메인 요리를 먹었으니 서브 요리를 먹어야지. 우리에겐 메인 요리와 디저트 사이에 하나의 요리가 더 있다. 우리 집의 엥겔지수가 높은 이유가 있다. 오늘의 중간 요리로는 국수를 먹었다. 매콤 새콤한 빨간 버전 비빔국수와 달콤 고소한 순한 버전 간장 국수가 순식간에 준비된다. 

나와 누나는 커피머신의 전원을 켠 뒤 커피 네 잔을 준비한다. 엄마와 아빠는 에스프레소 한 번에 캡슐 빼고 다시 에스프레소 한 번. 특별히 엄마를 위한 커피는 내가 생일 선물로 드린 엄마와 닮은 부엉이가 그려져 있는 커피잔에 담겨 나간다. 나와 누나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엄마 아빠의 것과 같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거나 잘게 부서진 얼음으로 가득 찬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도 한다. 최근엔 모두가 크루아상에 빠져 생지를 주문해다가 오븐에 구워 먹는다. 조그맣던 크루아상 반죽은 오븐 속에서 15분이 지나면 부피가 서너 배는 늘어난다. 완성된 크루아상은 매우 뜨거운 관계로, 반으로 나눈 뒤에 한쪽을 포크로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지금까지 밖에서 사 먹은 3500원짜리 크루아상에 쓴 돈이 아까워진다. 

대화의 2막은 커피와 빵을 먹으며 시작된다. 또다시 우리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10시에 시작된 대화의 장은 2시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을 때가 있다. 네 사람은 서로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한없이 가까워진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의 낮 시간을 좋아한다. 오로지 우리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정성 어린 음식들이 좋고 집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과 그 빛을 잔뜩 머금은 식물들과 꽃들이 좋다. 누나는 이제 곧 결혼을 할 테고 나는 직장을 가지면 타지로 나가 살 테니 이제 우리 집 주말 식탁은 조금 황량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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