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지 32년이 되었다. 32년이라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 포함해도 내 인생보다 5년이 더 긴 세월이다.
두 사람은 각각 22살과 24살에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서로를 처음 봤다. 친구들의 소개로 마련된 자리였다. 만 4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딸이 태어났고 6년이 지나서 뒤이어 아들이 나왔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나에게 엄마한테 순종하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그리곤 본인이 몸소 시범을 보인다는 듯이 자신의 아내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챙겼다. 체력이 약한 엄마는 하루를 조금만 무리하면 체하거나 몸 이곳저곳이 아팠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툴툴거리면서도 몇십 분이고 엄마의 어깨와 등과 손과 발을 정성껏 주물렀다. 엄마는 나에게 너는 꼭 튼튼한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셨는데 옆에 있던 아빠는 한 번도 그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엄마 또한 항상 아빠의 편이었다. 두 사람은 성격이 꽤나 달라서 아빠의 급한 면을 엄마의 차분함으로 균형 맞출 수 있었다. 엄마는 나와 누나에게 젊어서 아무것도 몰랐을 적에 아빠에게 속아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고 말하지만 늘 끝은 아빠의 칭찬과 함께 아빠에게 잘하라는 말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두 사람이 꽤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했다.
내 머리가 어느 정도 크고 난 뒤로 엄마와 아빠에 대한 기억은 항상 비슷했다. 평일이면 아빠의 퇴근 후 항상 거실의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켜놓곤 티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서로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었다. 주말이 되면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꽃을 사러 가고, 예쁘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가고, 때론 먼 곳으로 여행을 가며 데이트를 즐겼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어떻게 할 말이 끊이지 않는 건지, 평생 함께 하겠다는 서약을 한다는 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걸 뜻하는가 싶었다.
나의 인생에 가장 비대한 영향을 끼친 엄마와 아빠의 이런 모습을 평생 보고 자라서인지 나는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여행을 하고 카페에 가고 쇼핑을 하며 평범하지만 애틋하게 일주일을, 한 달을, 일 년을,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