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 중2병
시험 없는 교실
작곡, 편곡 : 박대현 | 작사 : 학교의 진화 | 노래 : 수요일밴드
세상에 시험이 없어졌네 하느님 내 소원 이루셨나
학교에 시험이 없어졌네 학교가 점점 좋아지네
꿈도 없고 하고 싶었던 일 없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다니
같이 하는 공부가 재미있어 같이 먹는 급식이 맛있어
함께 하는 교실이 재밌어 함께 웃는 우리가 정말 좋아
이렇게 공부가 재밌었나 선생님 얼굴은 그대론 데
학교에 시험이 없어졌네 학교가 점점 좋아지네
꿈도 없고 하고 싶었던 일 없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다니
같이 하는 공부가 재미있어 같이 먹는 급식이 맛있어
함께 하는 교실이 재밌어 함께 웃는 우리가 정말 좋아
함께 웃는 우리가 정말 좋아
서른 중반 중2병
내가 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중학교 2학년 만 할 때.
아버지는 공무원이셨지만 우리 집은 고추, 고구마, 밤, 벼 등등 이런저런 농사도 했다. 주말에 쉬고 싶은데 끌려가서 하는 농사일은 참 힘들고 싫었다. 싫고 힘든 농사일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공부 못하면 이렇게 힘들게 농사짓는다. 공부 많이 해라 알겠나?" 하셨다. 내가 공부를 한 이유는 편하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학생까지만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직업 중 가장 만만해 보이고 편해 보이는 직업이 선생님, 그중 수학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수능 점수가 경상대 수학교육과에 합격을 확신할 수 없어서 과학 선생님(과학교육과)과 초등학교 선생님(교대)을 고민하다가 진주교대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초등교사가 되었다.
초등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이후로 다음 결혼, 자식 키우기, 집 사기 이런 것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도 빠르게 하고, 아이들도 빠르게 놓고, 집도 빨리 샀다. 28살 때 둘째가 태어났고, 집도 샀다. 이제 뭐 하지? 하다가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해 보자 해서 수요일밴드, 뻘짓, 실천교육교사모임 등의 외부 활동을 했다. 가수도 해보고, 래퍼도 해보고, 연기도 하고, 영화도 만들고, 책도 내보고, 원격연수도 만들고, 연수 강사도 해보고, 유명한 선생님들 하는 것들은 조금씩 다 해봤다. 해 보기 전에는 막 다 대단해 보였는데 나도 해보니까 뭐 별거 없더라.
그래 이제 그다음은?
여기서 딱 하고 막혔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니 인제야 중2병이 걸렸다. 내 삶을 되돌아보다 자기 연민에 빠져 심각하게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고, 이상한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지기 시작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인류는 무엇이고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현실이 진짜 현실인가?
나는 어떤 때 행복함을 느끼고 어떤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한가?
같은 질문.
이런 삶에 대한 질문을 페북에 브런치에 계속 던졌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데 그때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지금도 스스로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답은 또 계속 바뀐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오래도록 하니까 생각하는 게 많이 바뀌더라. 나만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생기는 것 같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점점 생기더라.
어떤 분들은 이런 고민을 중고등학교 때 했었다는데 나는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못한걸 서른 중반 인제야 한다. 아무래도 서른 중반 되어서 이런 고민을 하니 어릴 적의 고민보다 좀 더 깊이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자기 긍정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