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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현 Nov 26. 2015

'불안' 이용가

아무것도 아닌 글

어릴 적부터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았다.


초등생이었던 시절 집에 들어와서 "엄마~" 부르고 대답이 없으면  집구석구석을 뒤졌다.

안방, 뒤꼍(뒤안), 창고, 푸세식 화장실 안까지 뒤졌는데

집에 별 이상이 안 보이면 그제야 안심했다.


엄마의 시체가 없어서 안심했다는 말이다.


초등시절부터 항상 나에겐

부모님의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고

이것은 언제 내가 고아가 되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고구마 팔이,  구두닦이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주었다.


중학교 즈음 들어 그 불안함은 극에 달했고

결론은 살아 계실 적에 공부를 해 놓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전문대라도 들어가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어른이 볼 때  철든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공부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공부를 했고, 반에서 십 몇 등 하던 등수를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으로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꾸준히 공부를 했다.

공부가 현재의 나에게 투자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 뛰어난 생계 수단임을 깨닫고 공부를 한 거다.


또 재미있는 점은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나 하고 싶은 거 별것 다 해보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공부와  관계없는 일 따위도 열심히 했다.


예를 들면 중학교 시절부터 고 2 때까지 거창 청소년가요제에 참가 한일

고등학교 응원단에서 춤을 추고, 응원을 기획하는 일

고등학교 학교 축제를 기획,  운영했던 일

거창 불교학생회 부회장을 치면서 매주 토요일엔 법당에서 목탁을 치는 일

여자친구도 사귀고,  몰래몰래 하지 마란 일 하는 일

같은 것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런 불안함은 이어지는데

부모님의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죽음

아내의 죽음

그리고 아들 딸의 죽음까지도

항상 염두 해두고 오늘을 살고 있다.


아내의 죽음

아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아내 없이도 육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육아에 대해서 애를 많이 썼다.

나름 아이들과 래포가 잘  형성되어 있다.

음식은... 사 먹으면 되더라. 마트도 잘 되어 있고 문제가 없음.

아내 없이 사는 삶은 많이 슬플 것 같다. 그리고 힘들 것 같다.


아들, 딸의 죽음

가장 슬픈 게 아들 딸의 죽음이다.

그냥 아들 딸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서 죽을 것 같다. (아내한테는 미안하지만...)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 안 선다. 그냥 버티며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다.

나중에 내가 후회 안 하게 잘해줘야지.  사랑받고 죽었다라고 생각하게 해줘야지.. 이렇게


*그리고 내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데 아들 딸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 아빠 진짜 좋았는데  그지?"라는 이야기를 하게 하는 선물을 하고 싶어서 애들에게 함께 있을 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아무튼 이런 식이다.




나라는 캐릭터는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그런 스타일인 거다.

에니어그램에 잘 나타나 있는데. 전형적인 6번 날개를 가진 7번 스타일인 거다.(엔터테이너형)


애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부터 환경에 반응하는 감정의 패턴을 알게 되었다.


여러 심리 검사를 많이 해보고, 얕게 공부해봤는데 애니어그램이 가장 깊은 원리를 깨닫게 해줬다.




사람마다 캐릭터가 다르니깐... 불안하게 생각하라~ 이건  일반화될 수 없는 말이다.


나에겐 성장에 있어서 내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패턴을 알게 되니깐 

나를 이해하고, 내 삶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감정이 생겼을 때 그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생기는 원리를 잘 알고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참 필요한 것 같다.


내 감정의 스위치를 찾는 일이라고 내가 흔히 표현하는데

많이 공부, 경험이 필요하고 꾸준히 자기를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 굳이 이런 글을 쓰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나 스스로도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한 건 내가 글로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쓰면 뭔가.... 머리 속이  정리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개운한 느낌.

그리고 이런 글을 남들이 볼 수 있게 남긴다라고 생각을 하면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나 스스로에게 당당해지는 느낌이 든다. 자존감? ㅋ

아닌가?

아님 말고.




페북 공유시에 쓴 글

나의 죽음, 부모님의 죽음, 아내의 죽음, 아들 딸의 죽음.
이 죽음들이 당장 내일 아니 오늘 퇴근길에 벌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저를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 불안이 괴로웠는데..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는 이 불안 덕분에 이렇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고
요즘 같은 때에는 이 내 '불안함'을 더 알아채는 능력이 생긴것 같습니다.
이 불안함 덕분에 내 신경을 여러곳으로 돌리고 다방면에 넓은 지식과 추진력이 있는 것을 알기에 그 넓고 얕은 지식과 추진력을 이용해 다양한 일을 벌리고 즐기니... 불안함을 이용한다라는 표현도 맞는 것 같습니다.(이 페북질도 그런 류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저나 저랑 비슷한 사람에게만 해당될 거에요.
그러니 너도 내일 죽을 수 있으니 불안하게 살아라는 진리가 될 수 없어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니깐요.
그러니까 서점에 있는 자기계발서는 나에게 맞지 않으면 그냥 사례1 정도입니다.
자기 방식대로 살면서 어쩌다 성공한걸 가지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는... 자기랑 성격과 환경이 똑~같을 때만가지고.. 
이야기 하는거니깐요.
담임 선생님이 필기 잘 해서 공부 잘했으니
모든 학생에게 필기를 강요하는건 어떤식의 폭력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선생님 비슷한 성향에겐 축복이겠지만요)
저는 학교 시절 끝까지 쓴 노트 한권 없이도 나름 괜찮은 성적을 유지 했고
일기장 한권 써 놓은것도 없어도 나름 창작 활동들을 잘 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에니어그램이 저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했지만
어떤 사람에겐 개소리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진리란건 모든 생명은 죽는다 정도 뿐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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