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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현 Nov 24. 2015

알바의 기억

초등학교 때부터 ROTC  합격하기 전 대학교 2학년까지

각종 알바를 했었는데..

최저 시급 기사를 보다가 문 듯 떠올라.

언제 휘발될지 모르는 기억들을 저장해 본다.


신문배달

초등학교(국민학교) 5학년 정도 때부터 석간신문 배달 알바를 했다.

딱히 집안이 어려워 생활비를 벌기 위함이 아니었고

집에서 주는 돈보다 더 돈이 쓰고 싶어 한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4시 즈음 자전거를 타고 경남 거창군 강변에 있는 KT 옆에 가서

신문을 받는다.

신문을 받기 전 시간이 나면 선전지(광고)를 넣기도 했는데

나와 친구들은 제법 잘 넣었다.

아마 경남신문? 일보? 아무튼 경남 어쩌고 신문을 약 하루에 60부 정도  배달했던 것 같다.


아마 한 달에 6천 원 정도 받았는지 모르겠다.

새우깡이 2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5만 원 되려나 모르겠다.


결혼식장 뷔페 접시 치우기

중학교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아마 고등학교 2학년 이전이였을꺼다.

친구 소개로 함께 갔다 주말에 하루 하면 이삼만 원 줬던 것 같다.

손님들이 먹은 접시를 치우는 거다.

뷔페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홍합만 한 그릇 떠먹고 먹고 싶은 것 한두 개만 먹었다.

나름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좋았다.


과외

고등학생 시절 친척 동생에게 과외를 했다.

나름 수학과 영어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에게 무슨 미분 적분인가.

분수의 곱셈, 나눗셈, 덧셈 정도다.

대략 20만 원 내외로 용돈을 받았던 것 같다.

신문배달은 받은 만큼 신문이 없어지는데

이놈의 분수의 덧셈 뺄셈은 며칠을 해도 안되니 갑갑했다.


당구장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과외도 없었고 고향에 내려와서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광고지를 보고 신청했다.

여름방학 동안 아침 10시 정도에 출근해서 청소하고 당구 다이 닦고, 공 닦고 하면

1시간 정도가 흘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당구장 다닐 때 담배 냄새가 싫어서,

그리고 그냥 딱딱한 공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능력이 뭐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에 당구를 치지 않았다.

당구장  알바하면 잘 치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당구장에서 혼자 치는데 뭐가 늘겠는가?


한방에 쓰리쿠 10개씩 하는 아저씨들이 대단해 보였다. 

저 섬세한 노력으로 당구 말고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저렇게 추리하게 입고 당구 치러 다니진 않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한두 달 일했는데

아직도 내 당구는 50이다.


아저씨들이 시키는 다방 커피와 짜장면을  배달시켜 주는 게 잔신부름이다.

얼마 받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차 대출 광고지 붙이기 그리고  빨간딱지

아마도 당구장 알바를 하면서 했는지 아니면 수능을 마치고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친구 하태한, 신민성과 함께 한 게 기억나는걸 보면 

아마 고등학교 마치고 겨울방학이었지 싶다.


단순히 '차 대출' 광고지를 차 창문 문틈에 끼우면 되었다.

흔한 조폭 아저씨가 운영하는 대출 업체였다.

다른 곳 보다 시급을 많이 쳐줬던 걸로  기억난다.

나중엔 요령이 생겨서 어느 정도 광고지를 붙이고

남은 광고지를 하수구에 버리면서 우리 걸리면 죽는데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은 주말에 오란다.

돈을 많이 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해인사 근처 어느 마을이었던 것 같다.


조폭 형들을 따라 어느 가정집에 들어갔다.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여져 있었고 형님들이 옮기라는 텔레비전, 냉장고, 컴퓨터 같은 살림살이들을

트럭으로 옮겼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차압 딱지 붙여져 있는 물건들이었다.


조폭 형들이 나빠 보였다.

고객들을 현혹해 대출을 해주고 돈을 안 갚으니 이렇게 물건들을 가져가는!

나쁜 사람들


한참 짐을 모두 옮기고

형들이 담배 피우면서 그랬다.


"대현아 형이 나쁜 사람 같지?

그런데 있잖아 빵 만드는 사람은 빵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고

옷 만드는 사람은 옷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고

우리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서 돈을 버는데

돈을 안 갚으면 우리는 이럴 수 밖에 없는거야.

어쩔 수 없는 거야."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그저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때 결심했다.


"대출은 은행권에서만 받기로,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로"


그 집에서 짐을 옮기려고

끄는 텔레비전을 그냥 묵묵히 보는 중학생 또래의 남자아이가 떠 오른다.


베스킨라빈스

"어서 오세요 베스킨라빈스 써리원입니다"

대학교 1학년, 2학년 정도 주말 알바를 했다.

토요일 일요일만 나가면 5만 원 정도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 최저임금은 모르겠고 시급 2천 원 내외였다.

진주시 차 없는 거리에 베스킨라빈스, 파리바게트가 붙어 있었던 가게다.


아침 8시 정도 나가서 문을 열고 청소를 한다.

대략 저녁 6시 즈음에 동생 하나가 더 와서 함께 일했다.


얼굴이 크고 덩치도 커서 핑크 모자와 앞치마가 어색했는데

지금보다는 젊고 생생했으니까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몰래몰래 수시로 맛보기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는데

한 번씩 꽂히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요즘은 안 나오는 워터멜론 아이스크림이 있었는데

수박바 맛이 났다.

녹색 맛에 꽂혀서 녹색 아이스크림만 먹었는데

그다음날 변이 녹색으로 나오는 거다.

신기해서  빨간색만 먹으니까 빨간 변이 나왔다.

체리 쥬빌레에 체리만 먹으면 검은 변이 나온다.


점심밥을 싸 오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반찬이 맛있었다.

아침은 어제 안 팔린 파리바게트 빵으로 먹었다.


선우 소막창

인라인 스케이트를 한창 탈 때였다.

같은 동호회에서 만난 형(아버지)의 가게였다.

일이 급해서 도와주라고 했는데 어쩌다 한두 달 일을 도와줬던 것 같다.

가게를 다 마치면 차돌박이를 먹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돌박이를 먹어봤다.

내가 고기를 잘 굽는데

막창 굽는 기술은 거기서 습득한 듯하다.

식당은 처음이었는데 이상하게 장사가 안되면 더 힘들었다.

장사가 잘 되면 시간이 잘 가서 좋았다.

괜히 장사가 안되면 미안하기도 했다.

콩나물 국이 맛있었다.


과외

고등학교 때도 과외를 했고

대학교 때도 과외를 했다.

직접 광고지를 만들어 붙이고 다녔다.

아마 선우 소막창 집을 하면서 과외도 했던 것 같다.

그때 드는 생각이

"과외 짱" 이였다.


시간 대비 가장 돈을 많이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제작

대학 때 페인트샵(포토샵 대항마) 강좌 사이트를  운영했다.

나모 웹에디터, 페인트샵, 제로보드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때다.

간혹 친구들 대학교 숙제로 홈페이지 만들기 숙제를

술 한잔  얻어먹고 한 시간만에 뚝딱 만들어 줄 때다.


어떤 친구가 소개를 시켜줘서

경남 신나라레코드(창원에 있었나? 진주에 있었나?) 홈페이지를 만들어줬다.

그때 대략 신경 좀 써서 만들어서

50만 원 받았나 모르겠다.


막노동

남자는 막노동이지! 하면서 친구랑 가려고 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안 갔다.

그 이후로 갈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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