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같은 일을 계속하게 되면서 공감대가 쌓이게 되서, 일로 만났지만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 친구도 그런 친구였다. 우연히 같은 회사에 다녔지만, 결국은 친구처럼 친해진 그런 친구. 그 친구는 약사면허가 있었다.
약사면허는 제약회사에서 승진의 프리패스(!)가 될 때가 많다. 입사해서 경험 삼아 영업 잠깐 하다가 마케팅을 갈 수도 있고, 메디컬 부서로 가서 임상관련 일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업무로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나같이 약사 아닌 영업사원에게, 약사면허는 쇼미더머니의 합격목걸이라고 할까? 절대 가질 수 없는 그런 것과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약사 영업사원들이 그렇듯, 그 친구도 영업을 오래 하진 못했다. 생각보다 이 영업이라는 게 자존감도 심히 떨어지고, 많이 양보해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약사 영업사원으로 살면서 의사한테 갑질 당하며 무시당하는 게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다. 그래서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요새 약대 가려면 공부도 잘해야 해서 1등은 도맡아 했었고, 대학교 졸업할 때도 상 받으면서 졸업 했었어. 근데 예전 의사들 지방대 의대 나왔으면 나보다 공부를 잘하긴 했을까? 그런데도 나 심하게 무시하고 짜증내고 잡상인 취급하는 거 너무 힘들어.”
친구 본인도 영업이 그다지 적성에 맞지 않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 가서 제일 힘들었다는 게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있기 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영업하며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는데, 앉아서 공부하려고 하는 습관 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다 극복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그 친구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 친구가 회사를 퇴사하고 대학원 다닐 때, 내가 차가 있다는 이유로 친구를 집에 데려다 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집에 데려다 주는 길에 손가락으로 어느 병원을 가리켰다.
“저기 저 병원 있지? 저기 나 10% 돈으로 가져다 줬잖아. 실적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갔다 줬어. 깡쳐서?”
“응.. 너무 힘들어서. 처방통계상으로 한 100만원 쓰는 곳이었어.”
“좀 키워보려면 200~300만원까지 키우지 그랬어? 깡 좀 더 치고. 인센티브도 더 받고, 회사에서 평가도 좋아지고 여러모로 좋았을텐데.”
“아니야, 20~30만원 해주려면 내가 깡 치는 거 부담스러워서 그냥 이정도 만 하자고 했어.”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리고 나 너무 웃긴 게, 회사에선 발표 못한다고 엄청 욕 먹었잖아. 나 대학원 다니며 발표할 때 얼마나 칭찬받았는지 몰라. 회사 다니면서 욕먹으며 배운 게 도움이 되긴 하더라.”
“그래. 영업이 좀 발표하는 거랑 말하는 건 많이 배우는 것도 있어 그치?”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 친구가 했던 병원을 돌고돌아 내가 담당하게 되었고, 담당자로 병원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분이 특별히 제약회사의 지원을 받진 않았고, 나한테는 커피 하나도 사오지 말라고 하셨다. 제약 회사랑 밥 먹거나 지원을 받아서 혹시라도 기록이 남는 것도 싫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선생님이 된 친구는 일반 회사에선 중간관리자급이 되어 있을 그 나이에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제약회사 다닐 때와 별 차이 없는 연봉으로 말이다. 연금 빼곤 굳이 좋은 게 없는 직업이 선생님이 아닐까 싶었다.
“아 이번에 겁나 짜증나. 이번에 나 코로나 재난지원금 소득 상위 20%라고 못 받았잖아. 남들은 많이도 받더니만 나는 왜 그렇대ㅠㅠ”
“OO아, 나 재난지원금 받어. “
“선생님은 월급 많이 받는 거 아니야? 어떻게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
“생각보다 선생 많이 돈 못 벌어. 잘 가르쳐야 하기에 공부만 더 해야 하고 월급은 짜고. 회사 다닐 때가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아. 오히려 학생들이 그래. 맨날 공부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은 더 꾀죄죄해 보이니까 더 힘들어 보인다고..”
“그렇구나, 생각보다 영업사원이 더 나을 때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