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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an 25. 2023

한파가 오기 전

[일기] 1월 23일 설 다음날  

한파가 몰려오기 전 꼭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처럼 문득 푹푹한 공기 속에 온몸을 가둬두고 싶어졌다. 코로나도 어느덧 남은 것보다 물러선 시간들이 저멀리 아득해보이기 시작했던 탓이다.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역시 몸의 감각. 지도앱을 열어 동네 목욕탕을 찾다가 먼 옛날 반복해서 해왔던 몸에 밴 습관처럼 목욕 후 이벤트가 아쉬워졌다. 평소 먹기 힘든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던지 짜장면을 먹는다던지 뭐 그런. 성에 차지 않는 것들 가운데 가장 손쉬운 이벤트로 떠오른 것이 영화감상이었다. 씨지브이앱에서 요즘 영화 뭐있나 찾아보니 정말이지 땡기는게 하나 없던 차 얼마전 인스타그램 친구가 추천한 영화 가가린이 떠올라 오랜만에 예술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볼 요량으로 네댓군데 영화관을 뒤적거리다 새삼 동네 근처 갈만한 예술영화관이 이토록 많았다니 꽤 은혜받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설연휴로 영업을 하지 않은 곳부터 시간이 애매한 것들을 지워나가다 꼭 그 영화로 정해둔 것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광화문 에무시네마에서 가가린을 보는 것으로 정하고, 이어 영화관까지 동선이 좋은 대중목욕탕도 검색했다. 연중무휴 상시영업 등으로 선택지가 많은 것들 중 다행히 영화관까지 걸어갈만한 위치의 대중목욕탕을 찾았고 찾아가보니 그곳은 광화문 한복판 찜질방이 딸린 꽤 규모가 있는 대중사우나였다. 어릴 때는 매주 엄마랑 동네목욕탕에 가 때를 밀었고(숨을 막힐 지경으로 날 조여오는 것 같은 그 공간이 싫었고 언제나 피하고 싶었으며, 그건 꽤 덩치가 커서까지 항상 신경질을 내며 내 온 몸을 밀어주던, 젊고 늘 화나있고 사는 게 고통스러워 보이는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탓이 클 것이다. 거기다 무방비상태로 맨 살에 맞았고 너무 아팠다) 성인이 되어서는 온갖 진귀한 곳을 찾아다닐만큼 매니아층에 속하는 편이지만 3년만에 찾은 까닭인지 들어설 때부터 자세가 주춤주춤, 왜인지 난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누가봐도 어리숙한 모습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영수증에 적힌 숫자에 따라 신발장과 라커룸을 찾고 내부에 들어서 "샤워 후 탕 속에 들어가세요", "수영금지"와 같은 안내문까지 꼼꼼히 읽어가며 42도와 40.2도의 탕을 한번씩 번갈아 드나들면서야 시스템과 분위기에 좀 익숙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번뜩 정신이 들고서야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낯선 이십여명의 사람들이 오래된 의식이라도 치루듯 자연스럽게 모여든 것이 보였다. 그리고 42도와 40.2도, 39.8도 36.7도의 탕을 세네번씩 오가고 55도가 넘는 습식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는 사이 같은 얼굴을 여러번 마주치며 이런 일상이 반갑기라도 한듯 눈인사도 나눴으나 결국 이 공간에 가장 적게 머무른 사람이 아마도 나 였을 거였다. 나는 그곳에서 고작 1시간 정도 머물었고, 영화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잊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이윽고 어둑해진 광화문 저녁의 거리, 몸에 가득 온기를 채우고 기세등등하게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7분여를 걸으니 목적지에 다다른듯, 휴일에다가 업무공간이 밀집되어 초저녁인데도 깜깜한 골목길에 유난히 밝은 빛을 띈 공간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보였다. 1층 카페엔 대여섯명 밖에 없는데도 공간 가득 사람들로 들어차 보였고 2층 영화관은 상영시간이 다되어서야 나온 앞선 영화의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고작 열두어명의 사람들이 교체되고 결국 시간이 지나서야 그러나 광고없이 재빠르게 시작된 영화는 채 열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머리통이 눈 앞에 행성처럼 떠있는 가운데 내내 상영되었다. 

가가린은 우주를 항해한 최초의 인류,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딴 공동주택의 이름.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으로 품고 건설된 이곳은 시간이 지나 어느덧 전면적 개발이 불가피한 저소득층 밀집 주거지역이 되고 결국 정부방침에 따라 전면 철거 결정이 내려지게 되는데 부모와는 따로 홀로 이곳에서 지내며 이웃의 보살핌 속에 자란 '유리'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공동주택의 철거를 앞두고 친구와 이웃들이 모두 떠나자 유리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이 서린 이곳 7층에 자기만의 우주선을 구축하며 지내고, 가가린의 철거를 위한 폭파 장면을 목격하고, 이곳을 기리기 위해 모여든 친구와 이웃들에 의해 이곳으로부터 구조된다. 마지막 장면은 꼭 상징처럼 폭파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주로 발사되는 것처럼 묘사되며 끝이 나는데, 무엇보다 고립과 소외된 아이들이 각자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서로를 행성으로 인정하는듯 자연스럽게 맴돌며 유리의 우주선 안에서 다만 부유하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고 유대하는 장면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영화였다. 가가린에서 멀지 않은, 그러나 역시 강제철거를 앞둔 주거지역에 사는 다이아나가 꼭 우주공간에서 벌이는 일처럼 공중 공사장 철탑에서 유리와 모스부호로 소통을 하는데, 그 공사장 철탑에서 다이아나와 그녀의 공간에 초대받은 유리가 첫키스를 하는 장면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설의 다음날. 꽤 풍족하게 하루를 보내고 새삼스런 새해 다짐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다만 다수의 타인을 무의식적으로 쫓지 않고 소소한 거리들을 찾아 하고 취향 따위를 가져보기 위해 하루하루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40대 중반으로 다다르며 40대를 어떻게 보낼지를 확정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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