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성미 고치기를 위한 3가지 실천 과제
처음 이 글의 제목으로 떠올린 건 ‘성질머리 고치기’였다. 성질머리. 성질의 비속적 표현이라니 안 좋은 것들만 뚝 떼어내 어디에 묻어버리고 싶은 내 마음을 이만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다 싶었다. 성질은 사람이 지닌 마음의 바탕을 일컫는 말이라 하고 성미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품이나 비위라는 뜻으로 구상했던 제목대로라면 마음의 바탕이나 본연의 성품을 고쳐먹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 뒤 이것이 본연의 나 라는 사람의 기질인지 사회화의 결과인지 알 수 없을 뿐더라 본연의 성질이라면 그것이 노력한들 고쳐질 성질의 것일까 싶어 당분간은 나쁜 습관 정도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고치고 싶은 고질적 습관은 ‘급한 성미’였다. 나는 현대인의 고질병과도 같은 ‘급한 성미’의 소유자다. 이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시작된 일은 정교함을 포기하고 되도록 빠르게 끝내는 걸 목표로 삼으며 동시에 다음의 할 일을 생각했다. 오랜 시간 공들이기 보다 작은 단기적 성과에 목을 매고 짜릿해 했다. 아마도 일을 하면서 생성되었거나 강화되었을 것이라 짐작하는 이 성미는 사회적 인정의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고 동시에 불안의 근원이기도 했을 터였다. 당장이라도 놀이터로 뛰어갈 자세로 문지방에 앉아 급하게 숙제를 끝내는 아이처럼 일이 라는 것이 대게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서 얼른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뭐든 언제나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임했다. 그 반대급부로 튕겨져 나가 몰입하고 싶은 좋아하는 일도 없으면서. 공들인데 비해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성과를 고민할수록 오류와 과오에 무뎌졌다. 자주 관계와 나 자신에 부주의해졌다. 그리고 그 오류와 과오의 대가는 언제든 반드시 치르게 될 명세서처럼 나의 몸과 마음, 관계 곳곳에 남겨졌다.
이 ‘급한 성미’를 다스려 봐야겠다는 고민은 꽤 오래 해온 것이지만 지금까지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까닭은 그로 인한 치명적 문제가 없었고 여전히 그 덕으로 근근하게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어떤 전환의 계기를 만들지 못한 탓이다. 그러다 돌연 올 여름을 경과하며 나쁜 습관을 고쳐먹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폐경기로의 진입을 알리는 예기치 않은 몸의 증후에 적잖이 당황하고부터다. 이 ‘급한 성미’에 따른 부주의함이 사회활동의 내리막에 안착하며 불필요해지거나 불편의 요소로 작동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노후 대비의 한트랙이며 30대 후반부 계획했던 ‘우아한 40대 되기’의 포석이기도 하다.(이미 40대 중반이 되었지만)
나는 최근 2025년 1월부터 실행할 ‘급한 성미를 고치기 위한 3가지 실천과제’를 정했다. 그 중엔 시도 중이기도 하고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것도 있다.(사부작 해보고 있지만 지금은 계도기간인 것으로)
첫번째, 시간은 금, 순간의 시간에 집중해보자.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그 끝을 자주 상상하곤 하는데 그래서 무엇을 하면서도 그저 시간을 떼울 뿐 행위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운동이다. 벌써 4년이 넘도록 주3일 이상 패턴을 유지하고 있어 제법 루틴으로 자리잡은 것 같지만 언제든 루틴이 와장창 무너질 것 같이 아슬아슬한 마음이 드는 까닭은 여러 동작으로 나눠진 인터벌운동을 할 때나 자전거를 돌릴 때나 총시간에만 의미를 둘 뿐, 운동의 효과와 무관하게 행해지는 무성의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천과제 중 하나는 운동할 때 동작 하나 하나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지 생각하며 해보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이어리에 휘갈겨 쓰지 않고 라인에 맞춰 꼼꼼하게 메모하기, 빨래를 탈탈 털어 반듯하게 널기, 마른 빨래감 끝을 맞춰 단정하게 개기, 세안 후 로션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바르기 등등이 있다.
두번째, 일상 기록하기. 시간을 흘려보내다시피 하다보니 기억이 소실되는 경험이 많다. 이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후(지금은 풀타임 근무를 하고 있지만) 생겨난 뒤 더 강화되었다. 좀처럼 머리에 담아두는 사건이 없다 보니 시간은 정말 손 안에 모래처럼 흘러내릴 뿐이었다. 며칠 전 나눈 대화가 기억이 나지 않는가 하면 새로운 것인 줄 알고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낯익어 생각해보니 이미 읽은 책을 처음 읽는 것처럼 읽는 경험이 종종 있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도 짧게 일기로 남겨보는 것과 읽은 책 또는 인상 깊게 본 영상물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 같은 것을 기록을 남겨보기로 한다. 매체는 고민중이다. 감상평은 브런치에 남길 가능성이 크다.
세번째, 티끌 모아 태산, 자산 축적의 기본 잊지 않기. 자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건 최근에 와서다. 내가 40대중반이니 꽤 늦은 편이다. 얼마전에야 1년 내 눈팅만 하던 주식을 시작했다.(그래봐야 초소액투자이지만) 남들 다 하니까 로 시작했지만 가만히 있어도 불어나는 이 요술같은 시장에 들어서고 나니 욕심이 먼저 눈덩이처럼 불었다. 길어야 1년짜리 적금 밖에 부어보지 못한 전형적인 단타스타일인데다가 누군가 왕창 돈을 벌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커뮤니티에 올라온,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에 귀가 팔랑거렸다. 소위 무노동 소득에 대하여 눈을 떠보고 있는 것인데 큰 자본력이 큰 수익을 발생하는 구조를 생각하면 자꾸 판돈을 키우고 싶어졌다. 이러니 청년들이 빚투를 하지. 자본금 없는 2~30대들이 빚내서 투자를 하는 까닭을 알 것도 같았다. 단기간에 한 탕 땡기고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컸을 터,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접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 탕도 능력, 사실 그 능력조차 없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축적의 기본이 달라질 수 없을 거였다. 남들 보다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던 게 아니었으니 정도대로라면 급할 것도 없었다. 70세 라는 목표 기한을 두고 서두르지 말자고 다독이고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정해 적금 붓는다는 생각으로 몇 주씩 모아간다는 원칙을 정했다.
비단 경제적 자산을 쌓기 위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관계 자산의 밀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끊어지기 바라고 애써 소홀했으나 종종 떠오르던 인연들 중 어떤 친구와 꼭 어제 만난 것처럼 연락을 주고 받다가 앞으로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본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
그러므로 2025년 새해엔. 자주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들, 잃지 말아야할 마음에 대하여 떠올려 사유해보고 열중해볼 참이다. 돌아보니 40대의 절반에 도달해있었다. 40대를 맞으며 프리랜서가 되었고 뜻하지 않게, 그리고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손에 꼽아두기만 했던 소설쓰기와 간헐적 지역살이를 해보았고 운전과 수영은 아직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과제다. 우아한 40대가 되고 싶은 계획은 아직 미완성이고 마음만 굴뚝인 현실을 직시중이며 그러므로 결과는 보잘 것 없고 손에 쥔 건 별 것 없지만 그렇다고 삶의 대한 낙천적 태도와 낙관이 수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2025년 새해엔. 그리고 남은 40대 시간 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잘 주워담고 소소하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잘 다지며 내가 가진 좋은 근성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볼테다. 꼭 2025년 새해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