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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Sep 30. 2024

MSG가 어때서

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8)

그러니까 요리도 못하는 주제에 고집은 있었다. 매번 간조절에 실패하면서도 끝내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건 어떤 정신같은 거였다.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체화된 정서였고 건강하게 살겠다는 연약한 다짐이었다. 그것은 시간과 경험이 쌓여 축조된 의식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무지와 편견에 가까운 것일지 몰랐다. 미원과 다시다를 거쳐 인공합성물을 넣지 않은 4세대 조미료까지 그 세계도 날로 자가발전 중이었지만 나에게 인공조미료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DNA에 어딘가 박혀있는 것처럼 견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더불어 우리집 장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데 엄마는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면 우리집 장이 맛있어 조미료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던 탓이다.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고보니 그것이야말로 집 고추장이면 시중에서 파는 떡볶이 맛은 아니더라도 얼추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엄마의 최면일지 몰랐다.    


그러니까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내가 유튜브로 레시피를 찾아보면서였다. 오늘도 나의 유튜브 페이지에는 한 게시물 건너 한 개씩 시장 떡볶이 레시피 종결이라거나 간단한데 맛있는 레시피라며 클릭을 유도하는 동영상이 짤로 뜨는데 제목에 이끌려 들어가보면 결국 입에 착 달라붙는 간조절의 비법이란 적당한 시점에 다시다 한꼬집을 살짝 뿌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보글보글 끓는 냄비 위로 옅은 브라운 색 가루가 흘날리는 장면이 나올 때쯤 동영상을 끄곤 했다. 그 끝은 알 필요 없다는 듯, 나랑은 무관한 레시피라는 듯 황급히 동영상을 끄고 나면 다음의 동영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먹방보다 소위 쿡방 예를 들면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의 브이로그나 빵 굽는 동영상, 간단한 반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동영상 등을 더 즐겨보는 편이다. 최근 온갖 모양으로 이쁘게 도시락을 싸는 동영상을 보고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잠깐 고민해본 적이 있다. 찰나의 고민이었다. 똥손인데다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바리바리 싸다니는 번거로움과 온갖 반찬냄새를 풍길 것을 생각하며 그만 둔 것이다. 부끄러운 도시락이 될 바에야 싸지 않는 것이 옳았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생각하지 않고 먹는 점심 한 끼는 프리랜서 이후 직장생활 중인 나에게 강력한 보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계란, 사과, 야채쥬스, 고구마, 모닝빵 등을 주메뉴로 하는 아침과 저녁을 제외하곤 일주일에 6회 이상 외식을 하면서 일주일의 고작 한끼 정도 해먹을까 말까 하는 나의 식생활에서 집에서 해 먹는 끼니까지 MSG로 맛을 낸 음식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자주 생각했다. 아침끼니를 빼먹지 않고 먹는데 사과와 삶은 계란, 주 5일에 한 번씩 토마토와 양배추, 바나나, 당근을 갈아 만드는 야채쥬스를 유지한지 5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직장생활 중인 최근 9개월 이전의 3년의 프리랜서 동안엔 되도록 점심도 양배추나 두부, 닭가슴살 등을 주재료로 해먹는 시간도 꽤 되었다. 나의 요리에 대한 관심은 이때 증폭되었고 내가 요리를 못한다는 사실도 이때 더욱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직장생활 중엔 일주일에 한끼 정도는 해먹자고 반려인과 함께 먹기를 매번 결심하는데, 그 한 끼의 식사가 맛도 있으면서 건강하기까지 하면 좋겠다는 바램은 꽤 자주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 냉장고를 열어보면 토마토소스부터 두반장, 굴소스, 허니머스터드 소스가 꽂혀있고 서랍장엔 카레와 부침, 튀김가루 등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나는 한동안 이것들이 MSG와 뭐가 다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럴 때면 고작 한끼에 MSG를 아낀다고 뭐가 달라질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미 나와 나의 반려인의 입맛은 MSG로 길들여져 있는데 MSG가 어때서 맛만 있음 되지. 라는 생각까지 미치고 나면 다시금 한 끼라도 정성을 들여보자, 한끼라도 할 수 있는 한 건강에 주안점을 두어보자 라는 연약한 다짐으로 생각을 종결해본다. 


냉장고에서 포장된 두부를 꺼내 흐르는 물에 행궈 올리브유에 살짝 구워내고 엄마표 김치를 쫑쫑 설어 참기름을 두르고 유기농설탕이나 알룰로스를 살짝 뿌려 볶아낸 볶음김치까지 한 접시에 올린 후 소파테이블에 쪼그려 앉아 누군가가들의 레시피 동영상을 줄줄이 틀어놓고 레시피를 머릿 속에 꾹꾹 눌러담을 것처럼 온갖 신경을 집중한다. 입 안에 김치와 참기름 향이 가득 차고 불현듯 세상 간 귀신들의 진짜 비법은 MSG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향처럼 번진다. MSG만 있으면 나도 요리천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참기름향과 함께 가득해진다. 그래 MSG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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