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에필로그 - 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언젠가부터 TV 속에는 요리를 잘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전문요리사가 아니래도 그랬다. 어릴 때 종종 TV에서 보곤 하였던 생활요리를 가르쳐주는 교육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물론 그것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대신 요리실력을 겨루거나 누군가 거하게 차린 밥상을 나누어 먹는 장면이 많이 보였다. 이색적 재료로 만들어진, 나에겐 엄두가 나지 않는 이국적 요리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어쩐지 요리도 전문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는 일에도 '잘했어요' 같은 칭찬스티커가 따라붙는 것 같았으며 요리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올해 상반기를 경과하면서 나와 혹은 내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차있는 TV나 SNS의 콘텐츠를 보는 시간이 조금씩 줄고 대리만족을 하는 것처럼 유튜브에서 먹방과 쿡방을 보는 시간이 늘고 있었다. 그것들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고 비주얼적으로 화려하거나 한때 유행하는 몇몇은 시도해보기도 하였고 결과물은 SNS에 올려보기도 하였지만 실패를 포장한 서툰 솜씨를 시도 자체만으로도 기특해하는 그런 게시글들이었다. 그것들은 일회적인 시도로 끝났고 때때로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없음을 포함한 빈곤함에 무의식의 콤플렉스가 발동하기도 했다. 그래도 직접 만들어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늘었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먹을 만하게 해먹을 줄 아는 방법을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왜 요리를 잘못하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요리실력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어깨 너머로 배우며 전수된다는 것이 밥을 해주는 이의 고달품조차 알 수 없이 주는대로 받아먹으며 그저 그 주변을 맴돌고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재료를 손질하고 가열도구를 잡아보고 볶고 섞고 찧는 등의 반복되는 수습과정을 거쳐 간을 맞추고 식탁에 내기까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돌봄노동에 함께 복무하며 체득되는 것인줄 미처 알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니 독립과 동시에 체득되었을거라 기대했던 그 요리실력은 독립 13년차인 지금까지도 내내 없었다. 세수하고 이빨 닦는 일처럼 최소한의 생활유지를 위해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라 여기는 동안 실력은 늘 수 없었다. 나 스스로 돌보는 일의 일부가 불가피한 허드렛일처럼 느껴졌으니 계획도 기획도 준비도 정성도 없었다. 뚝딱 만들어낸 상차림은 언제나 볼품이 없었다. 외식은 그렇게 늘어났다.
프리랜서가 된지 3년차만에 끼니를 챙기는 일을 중요한 일과로 배치한 후, 나의 실력은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듯 보였다. 어느 날 반려인인 남편에게 "오늘 나의 솜씨 어때? 일취월장했지?" 라고 물었더니 그가 "일취월장은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는거잖아. 이건 그렇게 설명할 수 없어. 완전히 다른 음식이야"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괄목상대였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마음가짐을 새로이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발전을 하였으니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이 달콤한 성취감을 계속 맛보고 싶지만 그 뒤는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해졌다.
그러나, 이리저리 돌려 생각해보아도 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많이 해보는 수밖에. 그리고 하루하루 일취월장 해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