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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Nov 28. 2023

냉장고를 부탁하고 싶어

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7)

옷장 가득 옷을 쌓아두고도 입을 게 없다는 그 불가사의 입버릇처럼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장을 보며 냉장고 가득 식재료를 쟁겨두고도 막상 냉장고만 열면 머리가 하애졌다. 이 재료들로 뭘 해먹을 수 있을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나의 요리가 잔치집(요리도 못하면서..) 마냥 거창해지는 이유은 집에 항상 있다시피 하는 김치, 된장, 고추장 등의 기본 장류이나 양파, 파, 마늘 등의 식재료, 기타 가공식품들을 이용해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완성품에 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크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집에 있는 재료들로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재료 조합을 보는 선구안마저 없었다. 


요리도 다른 창조적 활동 못지 않은 창의력을 요하는 기능이란 걸 깨달은 건, 남편과 있었던 몇몇의 에피소드와 코로나 이전 꽤 잘 나갔던 예능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세프들은 매주 의뢰인의 냉장고의 냉장실과 냉동고 또는 그 외 실온보관된 식재료들을 살펴 요리를 기획하고 15분 내로 요리를 해내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식재료가 차고 넘치는 경우도 쉽지 않게 느껴졌지만 텅 비다시피한 냉장고 안에서도 그들은 오아시스 같이 식재료를 찾아내 그럴듯한 요리를 내곤 했다. 레스토랑에 가서 먹을 수 있을 법한 그런 요리들이었다. 난 그것들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감탄해마지 않았는데, 흩어진 재료들 중 가능한 요리를 떠올리고 동시에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을 가려내며 최종선택된 재료를 조합해 하나의 완성된 요리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묘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머릿 속에 있는 거야, 그 중 주어진 조건 하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빠르게 가려내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이 필요한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전문가이므로 내가 본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오랜 연구를 통해 각 재료의 특징을 알고 언제든 새로운 요리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싹수는 남편에게도 있었다. 어쩐지 집밥을 선호하지 않는 것 같던(가끔 내가 해주는 요리에 대한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난 그저 남편이 외식을 좋아하는 줄 알았고, 나중엔 되도록 그 시간을 피해왔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와 외식을 많이 하던 결혼 초반이었다. 메뉴선정이 어려울 때면 우리는 종종 VIP 같은 뷔페식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곤 했는데, 남편은 완성품으로 진열된 음식 중 몇가지를 선택해 한 접시에 이것저것 퍼와 먹는 나와 다르게 접시 마다 나름의 서사를 부여하곤 했던 것이다. 그는 진열된 트레이들을 둘러보다가 어느 트레이에서 부재료로 쓰인 아스파라거스 몇 개와 샐러드칸의 채소, 마늘구이와 짱아치를 접시에 외곽에 둘러두고 마지막으로 접시 가운데 소고기스테이크를 받아와 퓨전 한식 스타일의 한접시를 완성해오곤 했다. 그때는 단지 메인 디쉬와 사이드 메뉴가 있는 그의 접시와 두서없이 이것저것 가득 퍼담기만 한 나의 접시를 비교하며 "이러면 내가 너무 식탐있어 보이잖아 앞으로 좀 조심해줘"하고 새초롬하게 말하고 말았는데, 사실 이것도 어떤 창의력의 문제임을 알게된 건 그가 집에서 가끔 요리를 할 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요리를 할 때마다 목적에 맞춰 재료를 구매하는 편이었고 그러다보면 집에 남아 있는지 모르고 사게 되는 버섯이나 파프리카, 당근, 감자, 양배추 등의 부재료들이 언제고 집에 쌓였다. 결국 버리게 되는 것들이 많았고, (심지어 엄마가 매년 만들어주시는, 요즘 금값이라는 김치마저도 소화하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였다.) 재료가 섞기 직전이 되면 남편이 등판해 재료들을 훑어보다가 이것저것 섞어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만들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것을 만들 재료가 집에 있었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남편이 한 대답이 "요리에도 창의력이 필요해"였다. 


그러니까, 나에겐 창의력이 없었다. 요리에도 창의력이 필요하단 걸 깨달은지는 꽤 되었지만 나는 최근에야 요리 창의력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종의 미션을 부여해 수행해보는 방식인데, 한가지 재료를 정해두고 할 수 있는 요리를 최대한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왕이면 집안에 산적한 식재료 문제 해결 중심으로 미션 주제를 선정하고 있다. 첫 미션 재료는 김치다. 엄마가 해준 작년 묵은지를 비롯해 겉절이, 김장김치 등을 내년까지 버리지 않고 다 먹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캠페인성이다. 나는 최근 조악하나마 김치전을 해보았고, 김치비빔국수를 해먹었으며, 엄마에게 배운 김치찜도 해보았다. 나의 반려자에게 꽤 괜찮은 피드백을 받았다. 그 외, 김치떡볶이, 김치콩나물국, 김치말이고기전. 묵은지멸치조림 등을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 창의력 개발 프로젝트의 다음 재료는 아직 고민중이고 다행히도 창의력 개발에 기본이라는 재미가 조금 붙었다.           


* 배너이미지 : 사진: Unsplash의 Ernest Br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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