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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Nov 23. 2023

뱃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않다

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6)

무식욕자와 요알못 사이에 한가지 상통하는 게 있다면 귀차니즘이다. 무식욕자는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고, 요알못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게 성가시다. 그래서 뱃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결론에 이르거나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드는 요리 처음부터 떼려넣고 만들어도 결과는 같다는 성급한 인과축소의 오류를 범하고 만다. 단지 생존만으로 생각하면 먹는 즐거움을 간과하게 되고, 결과만 같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미학이 사라지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가 어려워진다. 


요알못인 내가 평타를 치는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요리라는 것은 제빵류였다. 한데 섞어 반죽하여 구워내는, 간혹 반죽에 앙금을 넣어 구워내는 것이다. 단위별로 정확한 계량치가 적힌 레시피를 온라인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덕에 나는 대충 그 맛을 내기 어렵지 않았다. 단지 종종 태우거나 발효가 덜 되어 퍽퍽할 뿐. 그에 비하면 한식은 나 같은 요알못에겐 꽤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중식과 일식은 말할 것도 없고)스푼 단위로 계량된 한식 레시피는 적당히 맛만 낼 뿐, 입에 착붙는 간을 맞추는 데 최적화된 것은 아니었다. 한그릇 음식이 아니라 찬과 밥, 국까지 한 상으로 내는 한식은 구성 밸런스도 고려해야 하고 요리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도 재료 간 특징에 맞춰야 조리순서를 고려해야 한다니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요리 전문가가 될 것은 아니니 장의 맛내는 용도나 재료의 특징까지 공부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그리하여 내가 선호하게 된 조리방식은, 멸치나 새우,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재료와 양념을 넣고 끓여내거나 조려내는 음식이나 재료와 양념장을 섞어 볶아내는 식이다. 나는 유튜브나 포털사이트에서 레시피를 한번에 훑고, 양념장을 만들 때만 다시 들여다볼 뿐, 조리할 때는 머릿 속에 기억나는 대로 조리하는데, 그러니 대체로 양념장과 재료를 몽땅 넣어 끓거나 조리거나 볶게 되었다. 대체로는 못 먹을 정도는 아니나, 채소는 아삭한 맛이 없고 주재료인 고기나 해산물은 질겨지거나 퍼석해지기 일쑤였다. 진한 양념 덕에 온통 빨게 재료간 구분도 어려웠고 그러므로 플레이팅은 늘 엉망. 그야말로 양념맛으로 대충 밥과 함께 먹는 음식이 되고 만다. 


그러다 얼마전부터 최애로 좋아하는 떡볶이 만은 맛있게 집에서 만들어 먹어보고 싶다는 일념과 때아닌 투지로 몇 가지 레시피를 찾아 실험해보게 되었다. 기름떡볶이나 궁중떡볶이, 짜장떡볶이, 로제떡볶이 등 내게 별 메리트가 없는 떡볶이를 제외한 고추장떡볶이 레시피 중에 다시다 등의 가루조미료가 들어가지 않는 레시피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대게 어남선생 또는 백종원의 레시피에서 조금씩 변용된 것이 많았다. 나는 그 중에서 누구나 쉽게 맛을 낼 수 있다는 백종원 아저씨의 레시피를 주되게 이용하며 거기서 조금씩 변용된 레시피들로 몇 번의 떡볶이를 만들어보았고, 일반적인 레시피인 탓인지 이것으로는 맛도 모양도 내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떡볶이는 그냥 사먹어야 하나 하고 있을 때쯤 연관영상으로 유튜브에 짤로 뜨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것은 심상하게 영상을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방법이다 싶었다. 그리고 최근 그 식대로 해먹어 보았고 제법 분식집에서 파는 듯한 맛을 내었다. 

그 레시피는 물에 파와 어묵 그리고 설탕을 넣고 끓여 육수에 맛을 내고 팔팔 끓을 때쯤 불린 떡과 나머지 어묵, 양념장(이 양념장에는 굴소스가 소량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고, 나는 굴소스 대신 참지액젓을 넣어보기도 했다)을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남은 파 그리고 물엿 두 숟가락을 넣고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이 레시피를 보고 다른 것에 비하여 좋았던 것은, 맛을 내는 각종 소스들의 삽입순서의 이유와 그에 따른 맛의 레이어가 쌓이는 게 직관적으로 보여서였다. 1차적으로 파와 어묵, 설탕으로 육수에 단맛과 감칠맛을 내고, 2차 주재료인 떡과 어묵에 양념맛이 배도록 하다가 마지막에 물엿으로 단맛과 윤기를 조금더 강조해 마무리하는, 조리순서의 개연성이 나에게 와닿았던 탓이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제법 성공적(너무 후루룩 먹어서 사진도 찍지 못하였다) 그리고 한가지 더 깨달은 것이라면, 내가 만들어 먹고 싶은 것들마다의 나와 맞는 레시피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요리들이야 말해 해겠는가. 떡볶이 하나 만드는 것도 이러하거늘. 


섞이면 다 같은 게 아니었다. 조리의 순서는 모양만이 아니라 맛의 레이어를 쌓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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