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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Nov 18. 2023

뜨거울 때 간을 보지 말 것

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5)

"음식은 간이 전부야"


요리비법에 대하여 물었을 때 엄마에게 돌아온 답은 꽤 허무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처럼 요리를 잘해?" 라는 질문 혹은 엄마를 응원하며 한 말은 "어떻게 하면 간을 잘 맞춰?" 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도 했으니 "음식은 간이야"라는 엄마의 답은 질문이 부메랑처럼 그대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역으로 엄마 입장에서는 요리라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인이 박힌 것이어서 자로 재가며 간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요리에도 법칙이란 게 있어 그것만 잘 따르면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평가체계에 따라 잘잘못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테니 마땅한 답을 내주기 어려운 질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 되었고 그럼 나중에 김치 담그는 법이나 전수해줘 하고 말았는데,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어느 날 엄마는 내가 언젠가 한번 된통 말아먹었다고 말한 적 있는 오징어볶음에 밑간을 해두고 기다렸다가 나를 가스렌지 옆에 불러세워두고선 후라이팬에 올려둔 오징어볶음을 휘휘 저으며 "우리집 고추장이 맛있어서 나는 고추장이랑 설탕만 넣어. 약하게 간을 해두고 설탕을 조금씩 추가하면서 간을 맞추면 돼"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후라이팬에 벌겋게 맛이 밴 오징어 하나를 짚어들어 입에 넣어주며 "거봐 별 거 안 넣어도 맛있잖아" 라고 말했는데, 나는 채 씹지도 않은 상태였다. 물론 엄마의 오징어볶음 맛은 맛있었고, 그 뒤로도 난 그 맛을 낼 수 없었다. 그것이 엄마의 요리비법 전수였다.  


입에 철썩하고 붙는, 입에 딱 맞는 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사실 엄마의 음식을 먹은 후 깨닫게 되는 건 아니었다. 엄마의 음식은 너무나도 DNA에 각인된 맛이라 먹을 때는 입에 척 붙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기 보다 그냥 엄마 밥이었을 뿐이니까. 더군다나 나는 미각이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조미료를 넣은 맛과 아닌 맛을 구분할 줄도 몰랐고 물 맛 또는 재료의 신선도에 따른 미묘한 맛의 차이, 그 뭉근한 비린 맛도 잘 모르고 먹는 편이다. 가끔은 쉰 음식도 모르고 먹으니 후각마저도 그다지 민감한 편이 아니므로 맛의 경중을 알아채는 감각기관은 어찌된 일인지 죄다 꽝인 것이다. 곱창, 육회 등 못 먹는 음식은 꽤 되는데, 어릴 때부터 안 먹던 음식이거나 식감의 취향이 맞지 않는다거나 내가 보기에 좋지 않은 정도였다. 그러니 내 입에 딱 맞는 간이란 게 나에게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내 입에 척하고 달라붙는 그 맛의 경험을 하였는데, 4년전쯤 군산여행을 하면서였다. 군산의 죽성포구 어느 식당에서 먹은 첫 끼부터 매운탕과 소고기무국, 박대찜과 구이 등에 함께 찬으로 나오는 울외장아찌, 심지어 식당을 나오면서 커피자판기에서 뽑아먹던 그 싸구려 믹스커피 맛까지 모두 입에 척척 달라붙는 맛이었다. 나는 어쩜 커피까지 간이 딱이라며 "난 늙으면 여기 와서 살아야겠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곳의 맛은 뭐랄까... 외세의 영향에 따라 약간의 개량화를 거친 전라북도의 지역색이 베인 간, 슴슴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감도는 이었다. 정읍이 고향인 엄마의 음식도 전라북도 음식이면서 서울 살면서 약간 개량된 느낌 같았는데, 바로 이 간이었다. 나에게 익숙한 맛. 엄마의 고향 근처로 여행가고서야 알았다. 내게 맛는 간이란 게 있다는 걸. 


다시 돌아와서, 그러니까 그 간. 엄마 말대로 음식은 간이 전부라는데, 그 간이란 것이 꼭 감과 같아서 맞은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고, 의도치 않은 순간에 바로 이거 라고 무릎을 탁 치기도 하지만 다시 해보라고 하면 당췌 알다가도 모르겠는, 참으로 딱 맞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얼마나 맞추기 어려우면 '간을 맞춘다'라고 하겠냐 싶었다. 그래서, 엄마 말대로 조금 슴슴하다 싶게 양념을 해두고 요리를 하면서 조금씩 간을 맞추는 것이 최선이다 싶었고 엄마가 가르쳐준대로 오징어볶음을 해봤는데 정말 윽소리가 나게 단 것이었다. 


"윽 왜케 달아?" 감탄사와 같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걸 들은 남편이 기어코 한마디를 했다.   

"팔팔 끓을 때 간을 보니까 그래" (감탄사라고.. 누가 답하래...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맛있는 밥 만들어 먹기 참 쉽지 않네..."     


엄마, 왜 안 알려줬어. 뜨거울 땐 간을 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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