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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Nov 13. 2023

만족스런 끼니를 위한 절대적 시간

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4)

똥손 옵션이 결합된 요알못에게 모양 내기는 어려워도 맛이 없기 쉽지 않은 몇가지 치트키 같은 요리가 있다. 파스타나 카레, 마파두부나 된장찌개와 같은 소스나 장맛으로 얼추 맛이 보장되는 요리 같은 것이다. (결혼과 함께) 독립 후 한동안 해먹었던 것들이고 지금도 파스타면이나 카레가루는 떨어지지 않는 재료 중 하나다. 최근 들어 시도해보는 것들로는 비빔밥이나 볶음밥, 잡채 또는 김밥 등이 있고 조미된 갖자기 재료들을 섞어만드는 이런 요리들도 그 축에 들어간다.이들 요리는 만족도면에서 가심비가 꽤 괜찮은데, 식감이나 모양은 간헐적으로 괜찮기도 하고 대게는 엉망이지만 맛은 그런대로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은 기안84마저 맛이 없기 어렵다고 알려진 떼려넣고 섞는 요리를 해먹는다니 그야말로 치트키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맛내기 까다로운 것이라면 재료 한가지로 본연의 맛과 간을 맞춰야 하는 음식, 김치찌개 같은 것이 있고, 절대적으로 맛내기 어려운 것이라면 멸치볶음, 가지무침 등과 같은 갖가지 반찬들을 꼽을 수 있겠다.(김장은 당연히 생각도 못해보는 것이다. 아마도 평생..)


올해로 독립 13년차를 맞고 있는 동거인과 나는 주로 배달을 시켜먹거나 인스턴트음식으로, 종종 엄마가 해다주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마른반찬들과 앞서 언급된 도전적이지 않은 그러나 턱없이 적은 수의 옵션들을 취사선택해 집에서 해먹는 것으로 연명해왔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비중을 늘리기 시작한 건 내가 프리랜서가 되고 유연하게 사용가능한 여유시간이 많아지면서인데, 맘먹고 요리를 하면 잘 알 줄 알았던 나의 요리실력이 여유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도 그러므로 최근이다. 못하는 걸 인정하고 다른 대안들로 끼니를 떼울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요리를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40대 중후반에 들어선 혹은 들어서고 있는 동거인과 나의 신체적 연령체감 때문이 크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 본격적으로 집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나의 요리선생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찾아보는 영상과 피드들이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당시 유행하는 것들을 한동안 해먹거나 자취생들이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건강한 한접시 요리들을 하나씩 시도중이었다. 한때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했던 것들로, 복숭아 안에 요거트를 넣고 꿀을 뿌려먹는 것이나 소금에 저린 오이를 식빵에 올려먹는 오이샌드위치 같은 것들이 있고 나는 당시 일주일에 서너번씩 이것들을 해먹었다. 감자로 만드는 뇨끼 요리도 나혼자산다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보고 시도해본 것이며 그 외, 만두피 등으로 만드는 그라탕이나 양배추를 베이스로 만드는 오꼬노미야끼 등도 우연히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해먹는 음식이었다. 희안한 점이라면 다른 음식으로 옮겨가면 이전의 것들은 금방 잊혀지고 다시 그것들을 해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때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그야말로 금방 유행이 끝나 장롱에 처박히는 옷 같은 요리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요리하는 나를 되돌아 생각해보면 나는 퍽 창의성과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키토식이 유행하고 있는 요즘에는 김밥을 일주일에 서너번씩 해먹고 있는데, 당근이나 오뎅볶음을 주요 속재료로 밥대신에 두부를 으깨 계란으로 부쳐먹는 방식을 최종적으로 택하였다. 치트키 같은 것이라 맛은 평균적으로 좋은 편이다. 문제는 다른 것들보다 모양내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다른 것들은 대충, 그러니까 마요네즈만 위에 구불구불하게 뿌려놓거나 찌그러진 모양을 안보이게 아래 방향으로 엄폐만해도 그럴듯하게 보이는데 내가 만 김밥은 유튜브에서 보는 롤모델의 김밥들에 비하여 매일 눅눅하고 볼품없이 찌글찌글했고, 대게 말아있어야할 김이 속재료와 따로 놀아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한동안 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을 다른 것으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인 이후로는 그저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골똘해지기만 했다.(창의성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나쁜 건가...) 그러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가 말아주던 김밥을 복기해보며 불현듯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닥에 깔리는 밥, 나에겐 일종의 도우를 식혀서 말아야 한다는 거였다. 소풍가는 날 이 되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엄마는 밥통에 밥을 해 솥 채로 양념을 했고 꽤 긴 시간 부채질을 해가며 밥을 식혔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엄마가 잔뜩 재료를 늘어놓고 앉은 식탁 앞에 마주앉아 그것들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엄마는 간혹 나에게 부채질을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식혀 소금, 깨, 참기름 등에 양념한 밥을 김에 올려야 김에 밥의 습기가 배기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뒤로 나는 점심시간 두어시간 전에 물기를 뺀 두부를 계란과 섞어 미리 부쳐둔다. 여전히 김의 마감이 불완전한 문제가 있지만(두부계란도우는 찰기가 없는 까닭에) 그래도 김이 찌글찌글하지 않고 맨들맨들한 김밥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뒤 한가지 더 추가한 것이 있는데 아침시간에 점심엔 무얼먹을지 미리 계획하는 것이다. 어느 날 단백질을 보충한 답시고 그 당시 나에게 꽤 낯설었던 병아리콩을 삶은 적이 있었는데 두어시간을 삶아도 강도가 물러지지 않는 이 새로운 식재료가 기본 세시간 이상 불리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끼니를 준비하는 시간이 매 끼니마다 필요한 것이었다. 업무를 보고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썩 괜찮은 밥 한끼를 위하여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 같은 것이다. 만족스러운 밥한끼를 챙기기 위해 절대적 시간으로 필요하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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