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3)
불가사의한 일이다. 요리다운 요리를 제대로 해먹고 살지도 않았는데 오늘날 내가 보유하고 있는 이 수 많은 요리 장비와 도구들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말이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장비를 사모으는데 꽤나 신중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나는 장인이 될 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빵에 입문한지 1년여 제빵의 기술은 늘지 않았지만 반죽기와 오븐, 거품기, 그 외 제빵도구들까지 제빵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관련 장비와 요리도구들은 어느 작은 카페 못지 않게 늘어나 있었다. 난 이 도구들로 단팥빵과 식빵, 카스테라까지 단 세종류의 빵을 만들어봤고, 빵 그 특유의 오묘한 누런 빛깔을 내는데는 여전히 실패중이다.(오묘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사실상 거의 매번 태워먹고 있다) 오븐을 사기 전에는 에어프라이어에 빵을 구웠는데, 그 에어프라이어는 현재 고구마를 구워먹는 단 하나의 용도로 사용중이다.(고구마는 에어프라이어에 구워먹어야 제 맛이긴 함) 그 외 다른 수많은 일은 전자렌지가 하고 있다. 내가 보유한 오븐은 전기구이통닭과 같은 고기요리부터 각종 찜류의 요리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지만, 난 오직 빵을 굽는데만 사용중이다. 다른 요리들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은 제빵과 다른 매커니즘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후라이팬이 있다, 우리집엔 동그란 형태의 후라이팬이 소중대 크기로 있고(얼마전 소 사이즈의 후라이팬은 오래되어 버리긴 했지만) 얼마전엔 계란말이를 해보겠다고 사각 후라이팬도 구매하였다. 소 사이즈의 후라이팬에는 계란후라이만 사용하고 그 외 중 사이즈는 각종 전을 만드는 용으로, 대사이즈는 볶음요리용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중과 대 사이즈의 장비를 사용해야할 요리들이 갑자기 출출할 때 집에 있는 재료들로 휘리릭 해먹을 수 있는 것들로, 요리에 대한 상상력과 순발력이 부족한 나에겐 대체로 엄두가 나지 않아 이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양조절에 실패하는 나는 대신 거의 모든 요리를 웍으로 하고 있고 계란말이는 사각후라이팬에 한다. 얼마전에는 엄마의 요리솜씨의 비결이 비전냄비가 아닐까 하여 뺏어와서는 그곳에는 김치찌개만 해먹고 있는 중이다. 내가 요리장비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까닭은 불조절과 적당량, 음식의 규격과 모양 등이 장비당 1개의 옵션으로만 세팅되어 있어서인데, 그렇다고 맛이나 모양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할수록 늘겠지 라는(시간에 따라 나이를 먹듯이) 막연한 기대에 따라 간헐적 시도를 멈추지 않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팥을 쑤다가 단팥빵을 만들고 남은 팥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다른 요리가 무얼까 생각하다가 요새 비싸서 사먹기 겁난다는 붕어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자는 기특한 생각을 하며 또다시 온라인몰에 붕어빵 기계를 폭풍 검색해보다가 순간 등골이 살짝 오싹해졌는데, 그건 요리도구만 잔뜩 늘어나게 된 이유를 알아챈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야 너무나도 당연하고 지극해서 모두다 언급하지 않는 명제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요리의 성패여부는 장비의 유무와 성능과 무관하다는 그 명백한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