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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Nov 02. 2023

냉면 삶는 일도 예술로 한다는 것

난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2) 

여러 단계로 분업화된 생산과정 중 단 하나의 공정을 4~50년씩 반복하면서도 그것의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매순간 수고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재작년쯤 KBS 다큐 <냉면랩소디>를 보다가 든 생각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어느 사찰과 소담한 가정집, 백년가게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냉면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들과 그들의 터전을 찾아가 냉면 단 그릇이 창조되는 그 지난한 과정과 함께 주어진 조건에서 성의를 다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몸과 마음 다해 담아내는 장인들의 모습을 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 역시 종종 찾는 을지로의 평양냉면집에서 면 삶는 일만 몇십년째 하고 계시다는 분의 분주한 몸가짐을 보면서 불쑥 든 생각이었다. 그 분은 출근해 그날의 날씨를 살피고 이에 따라 물의 온도, 삶는 시간 등을 조정한다는 말했다. 면을 삶는 일마저도 예술이구나. 매일 반복되는 일에 진심을 다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때 나는 한창 여러 공정이 합쳐진 프로젝트를 홀로 수행하며 말이 안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걸 넘어 유의미한 성과로 만들어내겠다고 아득바득 애를 쓰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던 때였다. 화면 속 그 분과 나를 즉자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나의 상황에 찰싹 붙어 그 장면이 당췌 허투루 넘어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송을 다 청취한 후 나는 누구 보란 듯(상사 였을 터) 냉면 삶는 일도 예술로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허례 가득한 텍스트 잔득 적어 페이스북에 한바닥 써 올려두었다. 


그리하여 그 장인의 진심까지 닮고 싶었던 것인지는 영영 알 수 없으나 그때 그 일은 결국 나의 것이 되지 못했고 현재는 온통 바깥으로만 쏟아내던 에너지를 한데 모아 다분히 이기적으로 내 몸과 마음으로 풀어내고, 오직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에만 2년째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그 덕에 평온하였지만 2년의 시간 동안 얻은 결과물에 대하여 얼마 전 중간평가를 통해 나는 다소간의 좌절을 겪고 있는 상태인데, 그 좌절 중 하나가 좀처럼 늘지 않는 요리실력이다. 앞선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듯이 실력이 늘지 않은 분명한 원인 하나는 현실부정 즉, 꽤 긴 시간 내가 요리를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을테고, 몇몇 가까운 이들의 날선 그러나 날 위한 조언(아니 그건 좀 팩폭) 덕으로 끝내 그것을 인정하고야 만 후엔 나는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 내 상태를 온전히 인정했으니 그 뒤엔 가파른 성장세가 두드러질 거란 기대같은 것이었다.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차려내기 전 관련 각종 레퍼런스를 한 가지 이상 찾아보고 그 중에서도 초급 수준의 레시피를 골라 모방해보는 와중이나 여전히 맛내기에는 매번 실패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집에서 친구가 해준 토마토파스타를 먹다가 다시금 그 원인에 대하여 뼈아프게 직시하게 되었는데, 그건 친구의 그것과 내 것의 맛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왜 이마저도 내가 한 맛이랑 다를까, 그러니까 이게 어차피 다 가공된 토마토 소스 맛인데 왜 맛이 다른지 궁금해져서 친구에게 비법이 물으니, 친구가 또 뼈때리며 한다는 말이 "네가 설명서를 제대로 안 읽어서 그래" 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그걸 또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물을 넣는데 그러니까 왜 다들 면수를 넣잖아. 나도 그래서 면수를 넣는 건데. 그래서 네 것 보다 맛이 좀 싱거운거지 내가 한 것도 먹을 만 해" 하고 구구절절 말을 한데는, 인터넷으로 찾아본 레시피도, 포장지에 적힌 설명문도 제대로 읽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였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시도한 오징어볶음은 분명 물이 없는 오징어볶음 레시피를 찾아서 한 것인데 잔뜩 물이 나와 다시 읽어보니 레시피에는 나와있지 않은 재료인 '양배추'를 잔뜩 넣고 볶은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레시피를 읽고도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레시피를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인데 이게 다 급한 성미 때문일터였다. 사실, 여전히 요리하는 것, 스스로 끼니를 챙기는 것은 퍽 귀찮은 일이라고 여전히 뇌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외부의 자극이나 성취 또는 가까운 미래의 기대욕망이 없이도 지금 이순간, 현재에 성실하고 싶어 시작한 나에게로 집중하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퍼뜩 떠오른 것이 내가 2년여쯤 누구 보란 듯 올렸을 페이스북의 그 문구였다.(현재는 페이스북을 탈퇴한 상황이지만) 

'냉면 삶는 일도 예술로 한다는 것' 

뭐 예술까지. 밥상 하나 차리는데 온 힘을 다할 것까지. 그럼에도 밥상을 차리는, 이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매순간을, 단지 그 순간만큼은 지독스럽고 고집스럽게 혹은 그냥 닥치고, 그 시간에 충실하고 성실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일의 한 그릇에 필요한 것은 성실함, 그저 작은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다.

어차피 매일 몇 번씩 맞닥트리는 시간, 이왕이면 맛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시작한 일이니 그 즐거움을 위한 과정에 성실해보자. 그 끝에 낙이 있다.                  

분명 물 안 나오는 오징어볶음 레시피를 보고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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