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요리를 하게 된 건 결혼을 하고부터였다. 끼니를 챙겨주던 엄마가 집에 없어서였다. 처음엔 그 사실에 꽤 설레였다. 매일매일 먹고 싶은 걸 내 마음대로 해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굶고 싶을 때 굶을 수 있는 것까지를 포함한 자유였다. 삼시세끼를 챙기는 엄마의 노고에 맞게 피양육자로써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나의 식욕이 요구하는 대로 끼니를 챙기기 위해서 요리를 배워본다던가 하는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은 건 당연히 내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음식솜씨가 좋았고 난 그것이 유전처럼 되물림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렴 어깨 너머로 본 것이 얼마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고 했으니 못할 수 없는 일이라 믿었다. 더군다나 먹는 행위란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고 그와 관련된 스킬은 본능처럼 체득되어야 마땅했다. 나의 정의론에 따르면 이것에 있어서만은 차등이 있어선 안되었다. 그러므로 결혼 초반 한동안 꽤나 의욕적으로, 아니 그것은 과욕에 가깝게 벌어졌는데, 시댁 식구들을 포함한 수많은 집들이를 치뤘고 그때마다 직접 요리를 하여 손님을 맞은 것이었다. 무지에서 온 용기였는데, 이 용기가 한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제대로된 피드백을 받지 못한 덕이다. 갈비찜, 잡채, 온갖 전, 소고기뭇국과 같은 잔치상에서나 볼 수 있는, 손많이 가는 음식들을 나는 집들이때 선보이곤 했다. 희안하게도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식재료로 뚝딱뚝딱 만들어 내주던 엄마의 일상적이고 소박했던 찬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상적으로 요리를 해오지 않은 나의 음식들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나의 요리를 먹어본 손님들은 돌려 말하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그들은 기름 맛으로 먹는 전 같은 것에만 "전은 맛있네"라고 말하거나, 음식 밸런스에 신경을 쓰지 못한 상차림에 "입이 느끼해서 더 못먹겠다"는 식으로 평하곤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내가 요리를 못하는 구나 하고 알아챈 건, 돌려 말할 줄 모르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조카가 한 말 때문이었다. 여름보양식으로 특별히 준비했던 삼계탕을 먹던 조카가 이유를 알 수 없게 핏물이 섞여 있던 국물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보더니 단 한 입도 먹지 않고 나를 향해 돌아보며 "이모 요리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것이었다. 결혼 후 족히 5년은 지난 후였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걸 인정했고 그 뒤 손님맞이는 급격하게 줄었고 그와 반비례하게 배달해 먹는 경우가 늘었다.
최근 들어 다시 요리에 관심이 늘었는데, 몇 년 전부터 요리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아진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건강과 경제적 사정 때문이 크다. 얼마전부터는 책을 사보아야 할까, 아니면 요리학원 같은 곳에 가 배워볼까 하고 고민해보는 중이고, 그러면서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를 되짚어보고 있다. 요리를 잘 하고 못 하고의 문제는 내가 애초 생각했던 것처럼 본능이라기 보다 타고난 센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그 센스를 갖고 태어나진 못했지만 앞으로 찬찬히 키워보겠다는 의지로 문제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먹는 행위는 생존에 가까운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단지 끼니를 챙기면서도 이왕이면 미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그러고보니 즐거울 일도 점점 줄어드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