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그리고 서울살이 (26)
우리는 회복이 더뎠다. 대화 중 무시로 맥락에 맞지 않는 자기비하를 섞여 말할 때가 있었고 그 외 나머지는 알고도 모른 채 했다. 옛 과오에 대한 주제에 가장 많은 인원이 말을 보탰고 그 뒤엔 짧은 침묵이 뒤따랐다. 자주 화제를 전환했고 그만큼 진득하게 대화할 소재도 우리에겐 잘 없었다. 삶의 조건이 달라 공감하기 어려운 각자의 근황과 관심사가 공기 중에 부유했다. 그러고보니 우린 살아온 배경이 너무도 달랐다. 일할 땐 비슷한 성질머리들이 두드러져 보였던 우리 사이에는 이제 접점 없는 차이가 가드레일처럼 둘러서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유독 회복이 더딘 편이었다. 난 뭐 똑같지 뭐. 요즘은 재밌는 일이 없네. 누군가를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9~10월엔 그나마 하던 글쓰기도 손을 놓고 지냈다. 숨이 막히게 더운 여름이 가고 난 후 바람이 불자 순천으로 제천으로 담양으로 주로 가족들과 때론 친구들과 놀러다니느라 그런 것이었다. 여전히 공모결과를 기다리고, 내년초 탈고를 목표로 하는 단편은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의 이 시간이 어떤 시간일지 이 시간에 허우적 대는 동안에는 알수가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일을 할 때보다 더욱 폭넓게 사람들을 만났다. 그 전방위적 활동 덕에 그 사이 그는 동네 친구가 늘었다.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것 같기도 했고 친목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육아정보를 공유하는 동네친구들과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 환경 개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였는데, 조직, 홍보, 각종 실무 등 일로 습득된 노하우들이 대거 그곳에 투입되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인력낭비라며 사회 탓 혹은 걱정 비슷한 걸 하다가 곧이어 그게 더 중한 일이라고 정정해 말하곤 했다. 때로 그의 열정을 보고 있을 때면 직장생활로 풀어야할 사회활동의 욕구를 결국 어떻게든 풀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적극적 활동 덕으로 조만간 지역에서 작은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간 돌보지 못한 몸을 몰아서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미뤄뒀던 자궁에 혹을 떼내는 수술을 받았고 그 외 다른 부위 치료를 앞두고 체력보충중이라고 했다. 무슨 거창한 일 하느라고 수술을 몰아서 하느냐고 하며 우리는 조용히 키득거렸다. 그리고 그는 또, 심리상담부터 정신과 상담까지 자기의 정신건강을 위해 요구되는 처방에 따라 필요한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고 있었고, 그건 근황에 대한 알림이라기 보다 당신들도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받아보라는, 공지와 안내문 같기도 했다.
한동안 사람 만나는 걸 꺼려하던 나 때문에 모임 구성원 전원이 모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이날, 오랜 시간 홀로 논문을 쓰느라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싶다며 한 친구는 너른 물을 보고 싶다고 한강을 가자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제법 구체적인 솔루션이라는 데 놀랬고, 아쉽게도 이날은 비가 오는 바람에 한강에 가지 못했고 63빌딩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했으며 대신 그는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것을 꽤 집중하며 보았다.
소셜섹터에서 한때 조우했던 우리는 벌써 2년째, 2년전이나 1년전이나 한달전이나 어제나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는 시간을 경과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터널을 꽤 지나온 것 같다는 예측하기 어려운 감각을 공유하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극적이지 않지만 느리고 더디게 회복의 시간을 지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