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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Oct 16. 2023

남도영화제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23)

한때 독립영화쪽에 살짝 몸담았던 내가 기억하는 영화제는 정동진 그리고 전주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로 대별된다. 대체로 초창기나 한창 호황기의 그곳을 기억한다. 정동진영화제를 떠올릴때는 꼭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취해 숙취해 시달리는 이들이 아침이 되면 회귀본능처럼 행사장(폐교가 된 학교)으로 기어들어오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텐트 안으로 거칠 것 없이 들어오던 아침볕까지. 나는 그 뒤로 정동진영화제에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야외취침까지 그럭저럭 견디었다지만 아침이 되오기 시작하자 이글이글 익기 시작한 텐트 안에서 겪은, 털치지 못한 피곤과 그 무더위때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돌아가는 고난이었다. 술먹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해변가에서 자다가 돌아오는지 그날 아침에 알았던 것 같았다. 이제와 하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 지역의 주민들의 인내와 관용을 높이 산다. 그곳은 소위 운동적 성향이 강한 이들의 일시적 해방구 같았고,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자유로움이 넘실댔다. 


그에 비하면 전주영화제는 당시 이미 자리를 잘 잡은 영화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넓지 않은 도시 곳곳에 자유로운 영혼들이 흥에 취해 돌아다니고, 크고 작은 우연과 필연의 마주침이 자연스럽고 무시로 있던 곳이었다. 그때만은 영화에 대한 허례를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나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예술영화를 감상하고 동네 곳곳에서 떠들고 다니다가 어스름한 밤이 되면 누군가 마련한 파티에 참석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전주가 좋았다. 맛난 음식도 많은.

연말이 되면 한 시즌이 정리되는 것과 같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고, 그곳의 스케일 앞에서는 나는 자주 위축되곤 했다. 영화관계자로 참석했지만 왜인지 주변인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고 자주 해변에 앉아 멍을 때렸다. 그리고 늦은 시간이 되면 넓은 연회장에서 열리는 어느 대기업 배급사 파티에서 차리입은 사람들 가운데 어색하게 떠돌다 여럿이 한꺼번에 모여자는 창 밖으로는 오색찬란한 불빛이 밝게 안을 밝히는 어느 허름한 호텔방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순천에서 열리는 제1회 남도영화제 기간 중 11일부터 13일까지 순천에 머물었다. 행사장이 거리를 두고 곳곳에 산재한 덕에 페스티벌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잘 정리된 정원박람회장 잔디마당에 좌석에 앉아 전라도 사투리로 된 할머니의 추임새와 어린 아이들이 뛰어노는 가운데 짙은 구름낀 밤하늘 아래 오색의 정원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개막작 <땅에 쓰는 시>를 보았던 장면은 퍽 평화로웠다. 개폐막식을 비롯해 순천지역 영화관에서 무료의 영화상영과 GV 외에도 맛기행, 여행기행, 영상제작워크숍과순천 문화의 거리에서 진행되는 플리마켓 등의 부대행사가 16일까지 진행된다.

나는 개막식에서 김종관 감독의 공식 트레일러를 보던 장면이 가장 좋았다. 야외영화상영을 준비하는 지역주민들 뒤로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이 꽤 오랜시간 밤하늘 아래 스크린에 상영되었다.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순간에는 나홀로 순간 몰입해 있는데, 어떤 한순간이 그냥 막 계속 흘러가는 장면을 볼 때면 그곳에 있는 모두가 동시적으로 몰입된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이 고요한 영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도 한참 그것을 쳐다보았다. 집에서 OTT로 시리즈물을 보고 너튜브로 짧은 영상클립을 소비하는 시대에 영화는 무엇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나중에 나는 이 영화제를 어떻게 기억할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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