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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n 06. 2023

파란,만장한 2박 3일이었다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10) - 가족과 함께 한 순천여행

모든 날이 맑았다. 파란 도화지 위 하얀색을 문대듯 쓱쓱 덧칠하고 갖가지 색깔의 사물들을 잔뜩 오려붙인 복잡한, 그러나 구도상 위 아래로 단조로운 대비를 이루는, 눈을 돌리면 보이는 풍광들이 꼭 한 장의 그림 같았다. 그 순간에는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쨍쨍하게 맑을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2미터씩 서로 떨어져 거니는 식구들의 사이가 유난히 더욱 날카로운 선처럼 도드라지게 보였다. 나는 이 세사람 사이의 구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기본은 걷기로 설정된 것처럼 내내 걷다가 아빠 잠깐 여기 서봐요. 하면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춰 그 자리에 섰고. 여기서 뭐라도 마시고 가요. 하면 잽싸게 각자의 할 일을 찾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다 자리를 찾아 앉았다. 멈춰 서거나 앉아서는 모두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로 아빠와 남동생과는 처음인 여행이었다. 우리 모두는 뚝 떨어져 걸으며 서로의 존재에 집중한 채 좀처럼 주위 풍경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물론 모두는 그렇게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쯤엔 이 여행을 막 시작한 첫 날, 섣불렀던 것 아니냐고 나직하게 나를 걱정하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떨어져 지내온 지 한참된 가족들과 처음 시도해보는 여행이었다. 결국 모두를 곤란하게 만든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남편의 말대로 나 자신까지. 단란한 풍경들이 시도때도 없이 옆으로 지나갔다. 나는 가족 중 누군가가 나의 가까이 서있을 때면 "다들 참 열심히들 사진찍으시네"라거나 "저기가 포토스팟인가봐"라고 말했다.


나는 대게 준비 안 된 피사체를 뒤에서 훔쳐보듯 카메라를 들어 찍었다. 속으로는 이제 꽃밭만 걷자거나 그늘 안의 안식이라는 등의 의미를 두면서 였다. 그리고, 한번씩 사정상 함께 하지 못한 언니에게 사진을 보내주었고, 언니는 너무 좋아보인다, 잘했다 수빈아 라고 말하는 와중에, 먹이를 찾는 맹수처럼 놀릴거리를 찾아 "둘 이상 같이 찍은 사진은 없는거야?" 라고 물었다. 언니는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았다. 특히 여섯살 어린 나를 놀리는 걸 좋아했다. 나는 "둘을 한 프레임에 잡는 것도 힘들다" 라고 대답했고, 그 다음 언니 말은 진심으로 한 톡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스타일상 왜인지 사서 고생한다고 놀리는 말 같아서 약간은 웃겼고 그 때문에 나는 조금 긴장이 풀어진 것도 같았다.


"꼭 넷이 같이도 찍어"   


2박 3일로 계획했지만 오고 가는 날을 제외하면 꼬빡 하루의 시간이 났다. 약간은 의도된 것이기도 할터였다. 엄마차 한 차로 저녁 7시를 넘겨 도착한 세 사람을 나는 죽도봉 인근의 오리고기집 앞에서 재회했고, 미리 자리를 잡아둔 식당 안은 내내 붐볐다. 덕분에 분주한 분위기 안에서 식사를 잘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선 남편이 마련해둔 전통주를 마시며 다음날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예약된 점심 일정에 따라 낙안읍성과 사진촬영 등의 일정은 폐기 되었고 대신 오전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관람으로 오후엔 여수 수산시장 구경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어색했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관람과 점심을 먹은 후 여수로 넘어갈 때 아빠는 뒷좌석에서 한참을 졸았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힐끗 뒤를 보고 고개를 꾸뻑이며 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확인하고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도리 없이 눈이 감겼고 어쩐지 1분 정도는 잠깐 존 것도 같았다. 엄마의 말에 힘없이 답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손에 쥐어쥔 폰 속 네비게이션의 다음 신호까지 남은 키로수가 부쩍 줄어있는 걸 보니. 여수에서는, 돌산공원에 가서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케이블카는 40분 이상 대기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 모두는 시간을 떼워야 했기에 군말이 없었다. 표를 끊고는 경로우대 2천원 할인을 발견한 아빠가 엄마꺼까지 받아다 꼭 할인을 받으라는 통에 환불을 했다가 재구매했고, 그 뒤 배너로 서있는 홍보물에서 정원박람회 당일 입장권 2천원 할인이라는 표시를 보고 또 환불을 받아 우리는 모두 15000원에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3층 전망대로 올라가 전망대의 3면을 따라 왜인지 똑같아 보이는 바다를 대충 조망하다가 2층 승차장 대기장소에 내려가서도 우린 각자 떨어져 앉았다. 우리의 번호가 불렸을 때 아빠는 에어콘 바람 아래서 기념품 가게 안으로 이동중이었고 엄마와 남동생은 대기장소 곳곳에 앉아있었다. 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이제 우리 차례야"라고 말했고, 승차장 라인에 잽싸게들 모여들었다. 모여서 우리는 한동안 일행끼리만 타는데 굳이 비싼 크리스탈 차량 안타고 일반 차량을 타길 잘한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눴고, 아빠는 근데 두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중얼거렸다. 엄마가 나지막히 바닥이 보이는 것과 안보이는 것의 차이일 거라고 했지만 그 말은 전해지지 않았다. 케이블카에 타서는 최대한 각각의 모서리에 앉아 바깥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핸드폰을 계속 확인하던 아빠가 케이블카에 내리면서는 왕복 15000원짜리 케이블카가 1분당 1000원꼴이라고 총 7분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시간을 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산공원에 넘어와서는 전망대에 앉아 멀리 오동도를 보았고, 아빠가 전망대 난간 곳곳 소원을 적어 걸어둔 나무조각들에서 우리들의 이름을 찾았다. 그 중에 나와 언니 이름 찾았고, 끝내 남동생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아빠와 남동생은 언니 이름은 흔한 이름이 아닌데 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돌아오는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엄마가 크리스탈과 일반의 차이는 바닥이 보이고 안보이고의 차이일거라고 모두에게 들리게 말했고, 아빠는 문이 열리는 것마다 확인하다가 세개쯤이 지나갈 때 "그러네"라고 대꾸했다.

                              

여수수산시장에선, 삼시세끼 회 먹을 생각으로 사는 아빠가 조금더 신나보였다. 아빠는 가족모임마다 무얼 먹고 싶냐고 물으면 매번 회 라고 이야기 한다. 오랜 밀당 끝에 어느 수족관에 선 아빠가 지금은 뭐가 맛있냐고 하니 사장님이 무표정한 얼굴로 지금은 농어 좋다고 말했다. 조금 생각이 많아보이는 아빠를 종용해 농어를 하자 하고, 그 외 더 먹고 싶은 걸 고르라 했지만 저녁을 사기로 한 아들 생각에 선뜻 더 고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아들은 얼마전 돈사고를 쳤던 그 아들이었다. 그 사이 엄마는 저 멀리로 가서 다른 수족관 주변을 기웃대고 있었고, 손에는 이미 묵직한 검은 봉다리 하나가 들려있었다. 엄마를 찾느라 주변을 살피고 돌아온 사이 아빠가 어떤 낯선 아저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분은 참돔과 광어를 골라두고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언제 봤다고 서로의 몸을 툭툭 치며 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대화를 나눴다. 그 아저씨 옆으로 여성 두 분이 팔짱을 끼고 멀찍이 서있었다. 우리가 먼저 자리를 뜰 땐 좋은 저녁 시간을 보내시라고 인사를 나눴다. 회를 떠 수산시장을 나오는 아빠는 그 너스레 좋은 손님이 여름엔 농어죠 라고 아는 척을 했다며 자신의 선택을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엄마는 매운탕을 끊여내고 자신이 산 소라를 삶았다. 소라는 6개의 15000원이었다. 아빠는 개 당 얼마짜리 소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잎새주 3병과 함께 기분 좋게 저녁을 먹은 아빠가, 자신이 고덕아파트 뒷산에 텐트를 쳐주면 우리들이 신나게 놀았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말이 내가 5살 때쯤이라고, 나는 기억에 없었고, 그보다 계곡물이 불어나 피신한 어느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끓여먹었던 짜파게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빠는, 자신이 우리를 데리고 제법 놀러다녔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듯 혹은 취기인지 몇 번 더 이 이야기를 강조해 말했고, 난 사진으로 남겨진 그 시간을 모두 즐거원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화답해주었다. 그 뒤엔 나와 남동생도 모르는 아주 먼먼 옛 이야기들을 엄마와 나눴다. 낯익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촌스런 이름들이 차례로 거론되었다. 그것도 취기였을지도.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이 여행에 참여하지 않은 구성원 포함, 모든 가족들(아, 남동생은 아니구나)로부터 고생했다는 톡을 건내받았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돌아보니 고생 아닌 것도. 나도 좋았어"라고 답했다. 그리고 언니에게는 사진 한 장을 보냈다.

 

4명의 여행자가 얼결에 찍힌, 모두의 모습이 담긴 유일한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돌산공원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지산공원으로 넘어오는 와중에 느닷없이 카메라를 들이댄, 일종의 이벤트회사 직원에게서 찍힌 것인데, 다 상술이라고 비싼 돈 주고 사지 말라는 가족들을 만류하고 내가 증거로 남기기 위해 산 것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보내기 위해 오동도를 배경으로 이 사진을 들고 찍어보냈고, 이는 두 장에 18000원짜리, 값비싼 증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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