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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n 03. 2023

반주하시렵니까?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9)

이건 분명 오해와 착시, 편견으로 짜여진, 그러나 엄밀히는 확신이다. 

서울로부터 멀어질수록 식사 중 곁들여 마시는 '반주'의 경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경험에 근거한 일반화의 오류. 어제 드디어 점심식사를 하러 어느 식당에 앉아 자연스럽게 소주를 시키고 반 잔 자기 한 잔을 따라 마시는 반려인을 보며 이를 확신했다. 나는 식당의 다른 자리를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여긴 반주가 기본인 것 같아" 

대꾸해야할 말을 고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당황한 것인지 한참 소주잔을 들고 꿈뻑거리던 앞자리의 그가 신중하게 고른 말은 "그렇게 단정하면 안될 같아. 그거 일반화의 오류야"라는 말이었다. "야 내가 무슨 연구논문 쓰니?"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물론 나는 그것을 비난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좋은 식재료가 주변으로 널려있고 주어진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천혜 자연환경을 누리며 살며 정착된 문화라는 것이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경직되지 않은 삶의 방식을 고수해온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습관과 행위일테니까. 그리고 나는, 과해지지 않고 강요되지 않는 한에서 반주는 퍽 괜찮은 문화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근 있었던 한일정상회담의 만찬 때엔 반주로 경주법주가 올랐다니 자칫 경색될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이는 얼마나 윤활류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가. 이해관계가 맞부딪히는 사회 관계에서의 갖가지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이 그 차이를 좁히려고 하는 것인지 그보다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좁혀가는 수많은 도구와 수단, 매개체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던 차였다. 그러니 이는 정말이지 일종의 지역성의 폄훼를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여간 그 뒤로 나는 나의 심증을 굳힐 몇 개의 근거들을 수집하고 다녔다. 조금은 괘씸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역시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건, 전남 여수 경찰서에서 점심식사 후 반주로 인한 음주운전에 대하여 집중단속을 벌인다는 기사였다. (그렇다. 음주운전은 안된다. 절대로) 더군다나 그 집중단속 구역이 관공서와 회사 밀집 지역이라고 하니 업무 중 반주는 얼마나 빈번한 것인가. 반주로 인한 행정불편과 업무사고만 없다면야, 주구장창 일생활균형과 분리를 외치고 있는 도시생활자로써, 이들의 일상 안에 밥벌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그저 부러울 뿐인 것이다. 

     

두번째 근거는 가까운데 있다. 바로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냉장고 안이다. 남편은 지역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술과 안주를 받아오고 있다. 어버이날 선물로 아빠가 독차지한 진도홍주는 진도 방문 때 받아온 것이며, 낙안읍성 탁주와 순천만의 하늘을 담았다는 전통주 하늘담은 순천에서 프로젝트 중인 남편이 이곳 분들과 밥을 먹으러 다닐 때마다 챙겨받아온 것들이다. 그 외 내가 구겨 마신 것들인 구례산수유맥주와 매화마을막걸리가 있다. 이곳은 내 느낌에 서울로 따지면 동마다 지역술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술 종류가 많은데 반주를 안한다고? 그럼 이걸 다 언제 마시나..... 이렇게 많은 종류의 술은 또 왜 필요한 것인가. 담백한 요리랑 마실 땐 깔끔한 증류주와 매콤하고 강한 자극의 음식을 먹을 땐 걸쭉한 탁주랑, 그리고 그냥 아무때나 음료수처럼 시원하게 마시고 싶을 땐 달큰한 맥주로, 상황별 취사선택이 가능하도록 만든 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반주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근거는 바로 나다. 나는, 삼겸살구이집에선 반려인과 소주 반 병을 나눠마셨고, 어제의 생선구이집에선 얼마전 대구에서 말아먹어보았던 사이다와 맥주 조합을 반려인에게 추천했다. 약간 박카스 맛이 나는데 괜찮은지 물어보며. 지난번 엄마와 남도 여행 중 저녁식사 땐 남편이 받아온 매화막걸리를 나눠마셨고, 홀로 점심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날엔 남편이 받아온 것들을 차례로 맛보곤 했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빠에겐 여러 것들 중 신중하게 골라 딱 진도홍주만을 건내준 것이다. 지방간(TMI) 소견을 받은 후 5년간 술을 끊었던 나였다. 이래도 남도지역이 반주문화의 발원지이자 확산지라고 말하지 않을텐가!        


그래서 오늘은 무엇과 반주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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