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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n 01. 2023

제피김치를 찾아서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8)

어제는 간만에 날이 맑았고 오늘은 아침부터 또다시 비가 내리는 중이다. 그야말로 주룩주룩. 순천 2일차였던 어제는 내려오고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점심시간을 보내는 날이었고, 원래는 제보 받은 제피열무김치가 나온다는 생선구이집을 갈 예정이었으나 날이 맑다는 이유(?), 남편의 변덕에 따라 점심부터 고기를 궈먹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고 순천역 뒤 일본가옥풍의 철도 관사들이 모여있다는 관사마을에서 생삼겹살 구이를 먹었다.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삼겹살구이가 평타 이상이기 어렵다지만 고기를 좋아하시는 분들 말이 두께가 적당해서, 냉동이 아니어서 확실히 고기맛이 남다르다고 하여 찾아간 곳으로,  고기맛을 잘 모르는 나는 사실 그 곁들임 반찬과 함께 먹어 더 좋았던 곳이다. 겯들임반찬으로는 가죽짱아치와 매실짱아치, 콩가루, 새우젓, 직접 재배하신 것 같은 상추 등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사진도 메인요리는 없고 맨 곁들임음식 뿐이다. 여긴 어딜가나 반찬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나는 어김없이 이 집 김치를 살펴보았고, 그 김치는 잘 묵힌 액젓이 들어간, 전라도식 김치인 것 같았다. 혹시나 제피김치 라는 것이 나올까 해서였는데, 과연 내가 먹는다고 그것이 제피김치인지 알아 볼 수 있을 것인가 싶은 쓸데없는 걱정도 한켠 들었다. 물론,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 말로 그것은 강한 향을 가진 음식이니까.  

관사마을 관사식당에서 삼겹살구이와 김치찌개를 주문해 먹었고, 주물럭도 맛있다고 한다.


내가 제피김치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 건, 지난번 방문 때 먹은 정어리쌈밥의 방앗잎이 너무 좋았다는, 내 소회를 전해들으신 이 지역출신의 남편 지인 분에게서 제피김치도 한번 먹어보라는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그 대화는 메뉴판에 없는 제철음식만 골라 나왔던 소위 이모카세 식당에서 병어조림을 먹으며 나눈 것이었는데, 그 말을 엿들은 식당 주인분이 곧바로 주방에서 방앗잎을 한 대야 가득 가져오시더니 병어조림 위에 넣어주시고 다시 주방에 들어가셔서는 이어서 방앗잎을 다진 조갯살과 섞어 전으로 내오셨고 정말이지 코를 박고 먹는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싶도록 무아지경으로 먹었던 기억이 새록하다. 문제는 그 분이 추천을 해주시면서도 꽤 난감해하시는 것이었다.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친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제피김치를 먹었고, 순천으로 다시 거주지를 옮긴 후로는 가끔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자신도 찾아먹기 어려운 음식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추천을 했지만 이 지역에서조차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나는 전라북도 출신의 엄마에게 제피김치 이야기를 했고 혹시나 엄마가 담구는 방법을 알까 싶어 물은 것이었는데, 역시 엄마는 제피김치를 담글 줄 몰랐고 심지어는 향이 쎄서 아무나 먹기 어려운 거라고 경고 비스무레한 말을 나에게 남겼다. 이것저것 정보검색을 해보니 제피김치는 대게 경상도에서 먹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경상도쪽과 맞닿아 있는 광양, 순천, 여수 그리고 구례, 곡성, 남원까지 전라권에서는 김치양념에 제피를 넣어 만드는 문화가 있었고 나주, 고창 등의 호남권에서는 대게 육고기를 갈아 넣어먹는다고 한다. 덧붙여, 가족구성원 중 이 맛에 길들여진 사람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김치를 두 종류로 만들어 먹기도 할 정도로, 제피가 들어간 김치는 그 향이 쎄서 어릴 때부터 먹고 자라지 않은 사람이 적응하기 힘든 맛이라고. 나는 사실 이 말에 약간의 도전의식이 생겼다. 만약 제피김치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어디가서 향신료 좀 먹는다는 소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중이다. 


세번째 순천방문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그 분으로부터 남편을 통해 제보가 들어온 것이었다. 우리의 순천 숙소 근처 생선구이집에 제피열무김치를 반찬으로 주더라는 제보였다. 매번 나오는 것이 아니니 되도록 빨리 가보면 좋겠다고도 조언하셨다. 그 말에 더욱 마음이 급해져 어제 가보고 싶었으나 생선구이가 땡기지 않는다는 남편의 입맛에 따라 포기하고, 오늘은 아침부터 생선구이집에 전화를 걸어 혼자 가서도 먹을 수 있느냐고, 정말 제피열무김치가 반찬으로 나오느냐고 문의를 하였고, 1인분은 팔지 않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과 더불어 자기네 식당은 열무김치에 제피를 넣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이번주 내로는 꼭 남편을 데리고 그곳을 방문해야겠다 각오를 다지는 한편, 아 과연 제피김치는 나에게 맞을 것인가. 그 귀추가 자못 주목되는 바인 것이다. 근데 제피김치라면 제피가 들어간 배추김치를 먹어야 진짜배기 아닐런지 하는, 도전의식에 빵꾸 뚫리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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